6·10만세운동의 본질
누가 감히 6·10만세운동을 축소, 왜곡하는가?
우리 민족은 어두웠던 일제강점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잔혹한 일제의 착취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우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립운동 중에서도 일제가 직접 통치하는 삼엄한 국내에서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인해 ‘3대 독립운동’으로 손꼽히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바로 3·1운동(3·1혁명), 6·10만세운동(6·10독립항쟁), 광주학생독립운동(광주학생독립항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3대 독립운동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시 안다고 해도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유관순 등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6·10만세운동은 ‘순종 장례식 때 학생들이 만세를 외친 사건’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 사이에 생긴 패싸움을 계기로 학생들이 항의 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등 매우 단순하고 피상적인 수준에서 왜곡된 모습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3·1운동은 삼일절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기도 하고, 교과서나 매체에서 부분적으로라도 다루고 있어서 대강의 내용이나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긴 하지만 6·10만세운동이나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기념하는 날도 국경일이 아니고, 매체에서도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일까요?
더 읽어보기 ▼
그것은 모순된 사회 체제에 저항하여 민중들이 다함께 들고 일어난 혁명적 사건을 은폐, 축소하고 싶어하는 한국근현대사의 기득권 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입니다. 그들은 바로 일본제국주의 및 독재정권이었습니다. 이들은 시민들이 독립운동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배워 사회 비판과 참여 의식을 높이는 것이 제국주의/독재 체제 유지에 현실적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3대 독립운동 가운데에서도 3·1운동에 비해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더욱 축소시키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도 세력이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 잡힌 반공 독재 기득권 세력은 시민들이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일제는 6·10만세운동이 발발하자 수사와 재판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으로 조선공산당 조직과 학생 조직을 분리해서 처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그리고 이들과 연대했던 천도교 관련 독립운동가는 이른바 ‘6월사건’ 또는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3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하였습니다. 반면에 조선공산당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학생 11명은 ‘6·10만세사건’ 또는 ‘학생만세사건’으로 취급하며 최종 징역 1년을 선고하였습니다. 즉 일제는 6·10만세운동을 ‘조선공산당의 기획과 지휘하에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민족협동전선을 이루어 조직적으로 일어난 항일민족운동’이 아니라, 단지 ‘조선공산당과 관계 없는 일부 철없는 학생들이 순종의 죽음을 슬퍼하며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멋모르고 즉흥적이고 산발적으로 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그 의미를 애써 깎아 내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조선공산당 관련자들을 모두 6·10만세사건의 피의자로 처리한다면, 이는 6·10만세운동의 지도부가 조선공산당이라는 사실을 일제 스스로 인정하고 조선 민중들에게 선전하는 꼴이 되어, 오히려 조선공산당에게 민족운동의 정통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조선 민중들로 하여금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제2, 제3의 6·10만세운동에 계속 참여하게 하는,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제의 6·10만세운동의 축소 왜곡 시도는 해방 후에도 미군정을 거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반공 반민주 독재 세력에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리하여 6·10만세운동이 조선공산당의 주도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단지 학생운동으로 치부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이미 4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도 정부 주도하의 6·10만세운동 공식 행사에서 이러한 왜곡된 역사 인식에 기초한 기념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6·10만세운동을 일개 학생 운동으로 폄하하고 왜곡하는 자. 그들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와 독재 세력의 후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