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만세운동의 의의
우리가 6·10만세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6·10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6·10만세운동은 1920년대에 공고화되고 있던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폭주에 맞서 맨몸으로 항거한 세계사적 의의가 있는 사건입니다. 19세기 이래 식민지 민중을 침략, 착취하며 극을 향해 치닫고 있던 세계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는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 국가간의 전쟁으로 인해 자멸할 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18년 종전 이후에도 제국주의 체제는 역사의 엄중한 경고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단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패전국을 응징하고, 러시아 혁명의 확산을 견제함으로써 자신들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영구적인 식민지 착취를 하기 위해 다시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체제 공고화 작업은 1923년 워싱턴 회의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또한 일제는 조선 민중들이 3·1운동을 통해 한마음으로 들고 일어나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에게 제국주의를 포기할 것을 엄중 경고함으로써 강제병합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무시하고 폭압적으로 진압하였으며, 이로부터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단지 기만적 자유를 허용하는 ‘문화통치’와 친일파 양성을 통한 민족분열책을 통해 영구적인 식민 지배 체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치안유지법을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등 다시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조선의 민중들은 분연히 일어나 6·10만세운동을 펼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 및 세계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의 잘못을 꾸짖으며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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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6·10만세운동은 3·1운동으로 드러난 한국 민중의 사회 참여 의지가 일제의 폭압에도 불구하고 결코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중 참여 시위 운동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전통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결정적 사건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4·19혁명, 6·3항쟁, 유신반대투쟁,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항쟁 등으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랑스러운 한국 민족주의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의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셋째, 6·10만세운동은 이념과 사상의 차이를 뛰어넘어 좌우가 합작하는 민족운동의 전통을 만든 사건입니다. 6·10만세운동 이후 사회주의계와 민족주의계 간의 통합 노력은 가시화되었으며, 이는 민족유일당 운동과 신간회 창립, 충칭(重慶)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좌우통합정부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해방 직후 좌우대립이 심화되어갈 때 좌우합작 운동으로 부활했으며, 4·19혁명 이후에는 통일운동의 형태로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한국근현대사에서 좌익과 우익으로 불리는 세력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져서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가져오고 민중이 희생되고, 급기야 분단과 전쟁이 발발하여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등 크나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단의 고통은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민족적 화합을 통해 평화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지닌 현대 한국인들에게 6·10만세운동은 ‘좌우합작운동의 뿌리’라는 역사의 이정표로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