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권오상(權五尙, 1900~1928)

[권오돈(權五敦) : 권오상 선생의 족보상 이름은 권오돈이나, 학교생활과 일체의 사회활동은 권오상의 이름으로 행하였다.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 카드에도 '권오상(이명異名 권오돈)'으로 표기되어 있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에는 권오돈으로 기재되어 있다.]  


독립운동가 권오상!

비밀리에 추진하던 6∙10만세운동이 사전 발각되어 지도부가 체포되자

그는 6∙10만세운동의 주요 실행자로서 일제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만세운동을 완수했습니다. 

체포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고 몸이 망가진 나머지, 28세의 나이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인정한 독립운동가입니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열혈청년 권오상!

그는 배움에 목이 마른 청년이었습니다.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입신 출세를 위해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신흥청년동맹과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하여 

동지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며,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혁명가 권오상!

그는 혁명 운동에 앞장선 인물이었습니다.

일제 압제하의 식민지 조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해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온 힘을 다해 활동한 

실천적 지식인이었습니다.


  • 본관: 안동 권씨. 권오설과 14촌
  • 자: 전현(田賢)

      [가족관계]

  • 조부 권준희(權準羲, 1849~1936): 대한광복회.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2018년)
  • 부 권동직(權東稷, 1868~1921) 
  • 모 고성 이씨(1865~1908)
  • 부인 정차한(鄭次漢, 1899~1972)
  • 아들 권사혁(權師赫, 1926~1938)
  • 양자 권대송(權大宋, 1941~ , 1962.3.16. 입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