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사한 권오설 가매장. 장의는 형기 종료 후 (1930.5.9. 조선일보)

김찬휘
2025-07-01
조회수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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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한 권오설 가매장(假埋葬)
장례는 형기 종료 후
시체 운반에도 무서운 경계

향리 안동 가곡에서


원적을 경북 안동군 풍서면 가곡동에 둔
 권오설(權五卨, 34)은 제1차 조선공산당의 책임 비서로 해외와 국내에서 활동하든 중, 대정15년(1926년) 6월 7일에 종로경찰서원의 손에 체포되어 취조를 마치고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이란 장구한 시일을 예심에서 지나서 징역 5년의 언도를 받고,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급성폐렴으로 3월 17일에 서대문 형무소 병감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함은 그 당시 보도한 바와 같고 ,급보를 접하고 동생 권오기(權五箕)씨가 급거 상경하여 시체를 인수하여 동 20일 향리인 위에서 언급한 가곡동으로 운구하였다는데, 당일 안동경찰서에서는 길(吉) 고등계 주임 지휘 하에 수십여명의 정사복 경관이 출동하는 동시에 예천경찰서의 지원을 받아 어마어마한 경계리에 일체 통행인까지도 금지하는등 실로 계엄지대와 같은 상황에서 무사히 운구를 마치고, 동 23일 풍서면 공동묘지에 가매장(假埋葬)을 하고 장례는 형기를 마친 뒤에 거행하리라는데 아마 그 시기는 내년 5월경이나 되리라 한다.(안동)


[참고] 일제는 사실 보도 기사까지 탄압하여 2주 후에 조선일보는 기사 전체를 취소하는 기사를 냈다. 
(1930.5.22. 조선일보)
◇취소(取消)
5월 9일부 본보 제3355호 제2면『옥사(獄死)한 
권오설(權五卨) 가매장 장례는 형기 종료 후』  란 제하(題下)에 게재된 기사는 사실과 다른 점이 있기에 해당 기사를 취소함 (안동)


<원문>

옥사(獄死)한 권오설 가매장(權五卨假埋葬)
장의(葬儀)는 형기 종료 후(刑期終了後)
시체 운반에도 무서운 경계
향리안동가곡(鄕里安東佳谷)에서


원적을 경북안동군풍서면가곡동(慶北安東郡豊西面佳谷洞)에 둔 권오설(權五卨) (삼사(三四)은 제일차 조선공산당(朝鮮共產黨)의 책임 비서로 해내해외에서 활동하든 중 대정십 오년 륙월칠일에 종로경찰서원의 손에 체포되어 취조를 마치고 경성지방법원에서 삼년이란 장구한 시일을 예심에서 지나서 징역 오년의 언도를 밧고 이래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든 중 급성폐염(急性肺炎)으로 삼월 십칠일에 서대문 형무소 병감에서 불귀의 객이 되엇다 함은 그당시 보도한바와 갓거니와 급보를 접하고 계씨 권오긔(權五箕)씨가 급거상경하야 시체를 인수하야 동이십일 향리인 전긔 가곡동으로 운구(運柩))하엿다는데 당일 안동경찰서에서는 길(吉)고등계 주임 지휘하에 수십여명의 정사복경관이 출동하는 동시 례천(體泉)경찰서의 응원을 어더 어마어마한 경계리에 일체 통행인까지도 금지하는등 실로 계엄지대와 가튼 중에 무사히 운구를 마치고 동이십삼일 풍서면 공동묘지(共同墓地)에 가매장(假埋葬)을 하고 장의(葬儀)는 형긔를 맛친뒤에 거행하리라는데 아마 그 시긔는 명년 오월경이나 되리라 한다.(안긔)

(1930.5.22. 조선일보)
◇취소(取消)
오월구일부본보제삼천삼백오십오호제이면(五月九日付本報第三千三百五十五號第二面)『옥사(獄死)한 권오설 가매장장의(權五卨假埋葬葬儀)는 형기 종료 후(刑期終了後)』 란제하(題下)에 게재(揭載)된 기사(記事)는 사실(事實)과 상위(相違)된 점(點)이 유(有)하옵기자(茲)에 해기사(該記事)를 취소(取消)함 (안동(安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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