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완료) 조선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무총감 회견기(동아일보 1927.11.30.)

김찬휘
202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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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러 문제에 대한 정무총감과 회견기

=포시진치(布施 辰治)= 

포시진치(布施 辰治) : 朝鮮共產黨事件(조선공산당사건)을 중심으로 야기된 總督政治(총독 정치)의○○問題(문제)를 탄핵하기 위하여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대한 항의를 가지고 朝鮮勞動總同盟(조선노동총동맹)의 金均(김 균), 新幹會(신간회)의 趙憲永(조헌영), 大衆新聞(대중신문)의 박낙종(朴洛鍾) 등 세 사람과 함께 朝鮮總督府政務總監 湯淺倉平(조선총독부정무총감 탕천 창평) 씨와 회견하였다. 

당일 내가 위 세 사람과  함께 저와의 회견을 구함에 저는 小河(소하) 비서로 하여금 “布施(포시) 씨와는 회견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기타의 사람과 회견하기를 약속하지 아니하였다" 고 말하며 세 사람을 돌려 보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혼자서 湯淺(탕천)씨에 면회하고 말하였다. 

布施(포시) : 小河(소하) 비서는 아시려니와 어제도 네 사람이 왔었습니다. 그럼으로 네 사람이 오늘의 면회를 구하여도 좋을 줄 압니다. 그런데 용건은 한 가지 이니까 나  한 사람의 명으로 면회를 구한 것이 외다. 꼭 세 사람과 함께 만나주시오. 나 한 사람 만날 시간으로 나와 함께 다른 세 사람도 만나 주는 것이니까  물론 시간의 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선인임이 다소 문제 이겠지만 결코 조악하고 포악한 사람들이 아님을 나는 책임을 가지고 보증합니다.  總監(총감) “默黑點頭(묵흑점두)"?

세 사람을 초청하여 결국 네 사람으로 회견하였다. 

그 회견의 결과 우리들의 책임 추궁과 항의에 대하여  그는 무어라고 말하였는지......(이하생략) 

때 :  1927년 10월 28일   오전 11시 40분부터 오후 1시 15분까지 

장소 :  조선총독부 동경출장소 총감실 

포시 : 면회를  구한 것은 지금 경성지방법원에서 공판 개정 중인 權五卨 外 백명에 관한 치안유지법 위반사건의 변호인으로써 내가 渡鮮(도선)하여 滯在中法廷內外( 체재중법정내외)에서 야기된 總督政治(총독정치)의○○에 대하여  총독부 당국의 고려와 반성을 요구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고려와 반성을 요구할 사실을 말하기 전에 우리들의 태도를 밝혀두겠습니다. 

실상은 내가 조선에 가서 견문한 조선인 제군의 총독 정치에 대한 생각으로 보면 총독부 당국에 면회하여  總督政治(총독정치)의 ○○에 대하여 고려 혹은 반성을 구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共產黨事件(공산당사건)을 중심으로 惹起(야기)한 總督府(총독부)의 言論集會(언론집회)에 대한 政治的 禁止 處分(정치적 금지 처분)은 모두를 압박할 방침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내가 조선에 가 있을 때  煙草專賣局(연초전매국)의 合同問題(합동문제)가 있었고  驛前運送店(역전운송점)의 驛店問題(역점문제)가 있었으며 또한水利組合(수리조합)일에 대하여도 여러가지 運動(운동)이 있었으나 總督府(총독부)의 경제적 시설은 조선인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을○○하였으면 그만이라는 방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러한 경제상 정치상의 통치 방침을 정하고 있는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대하여 어떠한○○的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제의하여  반성을 구하는 것은 본래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는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고려할만한 성의를 인정치 않는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나도 실제의 문제에 대하여 조선총독부의 조선 통치 방침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총독부의 조선 통치 방침이 거기에 있으면 그것과 항쟁하기 위하여서도 한번은 총독부국에 회견하여  이를 확실히 다진 후 그 항쟁 태도를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또 다행히 총독부 당국의 생각은 그렇게 심한 것이 아니요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의심이 있는 점은 고려를 한다고 하는 성의가 있다고 하면 한번 그 반성과 고려를 구하는 것이 인간적 태도라고 생각함으로 회견을 구한 것이외다 .

그럼으로 우리들은 항의적으로 질문할 문제에 대하여 거침없이 틀린 점은 틀렸다고 말하여 주고 설명 할 일이 있으면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며 고려 반성할 것이 있으면 그 聲明(성명)을 하여 달라는 것을 먼저 양해 하여 주시오

總監(총감) 답 

布施(포시) 말 : 제일의  조선의 문제에 대하여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의 의견을 말하여 달라고 하는 문제는 많으나 금일은 공산당 사건을 중심으로한 문제에 국한하여 말합니다.  동 사건의 공판 개정 후 내가 조선에 간 10월 18일까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신문으로도 물론 아셨을 것이요. 총독부 측의 통지도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만 그 간에 취한 총독부의 處置(처치)는 총독 總監(총감) 警務局長(경무국장) 공히 부재 중이었는데 總督總監警務局長(총독 총감 경무국장) 등이 모두 指圖(지도)를 하고 指揮(지휘)를 하였는지 혹은 부재 중의 일은 일절 남아있는 사람 등에게 마땅히 일임한다고 하여 남아 있는 사람 등이 자유 재량을 한 일 인지를 듣고 싶습니다 .

總監(촉감) : 總督(총독)은 아시는 바와 같이 "제네바의 軍縮會議 出席 後(군축회의 출석 후) 편안한 날이 없이 분주하여 임지를 떠나 있었고 나는 매년 예산 제출을 위하여 요즘 상경하여 있게 되었는데 금년은 식민지의 예산 제출을  1개월 쯤  빨리 하라는 내각의 요망이 있어서 임지를 떠나 있었고 아직 잠깐 여기 있어 서야 되겠소. 淺利局長(천리국장)은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귀경하여 있음으로 실상은 삼인이 모두 한꺼번에 임지를 떠나려 하지 아니하였지마는 이상의 관계 상 떠난 것이외다. 

布施(포시) : 저러한 큰 문제가 있을 때 총독도 總監(총감)도 警務局長(경무국장)도 모두 떠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떠남에는 반드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은 말은 듣지 않더라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나도 그 떠난 이유를 묻는 것은 아닙니다.  부재 중에  공산당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제의치 않을 수 없는 총독부의 處置(처치)가 당신들의  직접 지휘로 된 것인지 부재 중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자유 재량에 나온 것인가 먼저 그것에 따라서 항의의 책임을 명백히 하려 합니다.  

總監(총감) : 어떠한 일을 제의하는 것인지 또 어떠한 문제가 일어났다고 하는 일에 대하여 별반 공산당 사건의 재판에 대하여 지휘를 청한 일도 없고  또 지휘를 命(명)하여 온 일도 없습니다.


<원문>

朝鮮各問題(조선각문제)로 政務總監(정무총감)과 會見記(회견기)

=布施(포시)辰治(진치)= 

朝鮮共產黨事件(조선공산당사건)을 中心(중심)으로捲起(권기)된總督政治(총독 정치)의○○問題(문제)를彈劾(탄핵)하기(위)하야나는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對(대)한 抗議(항의)를 가지고 朝鮮勞動總同盟(조선노동총동맹)의 金均(김 균), 新幹會(신간회)의 趙憲永(조헌영), 大衆新聞(대중신문)의 朴洛鍾等三君(박낙 종등삼군)과 共(공)히 朝鮮總督府政務總監湯淺倉平氏(조선총독부정무총감탕천 창평씨)와 會見(회견)하였다. 

當日(당일) 내가右三君(우삼군)과 共(공)히 彼(피)와의 會見(회견)을 求(구)함에 彼(피)는 小河秘書(소하비서)로 하야금 

“布施氏(포시씨)와는 會見(회견)할 事(사)를 約束(약속)하엿스나 其他(기타)의 사람과 會見(회견)하기를 約束(약속)하지 아니하였다" 

고 말하며 三君(삼군)을 돌려보내고저 하였다.  그래서 나는 몬저 혼자서 湯淺氏(탕천씨)에 面會(면회)하고 말하였다. 

布施(포시) 小河秘書(소하비서)는 아시려니와 昨日(작일)도 四人(사인)이 왓섯슴니다. 그럼으로 四人(사인)이 本日(본일)의 面會(면회)를 求(구)하여도 조를 줄 암니다. 그런데 用件(용건)은 한가지이닛가 나  一 人(일인)의 名(명)으로 面會(면회)를 求(구)한 것이외다. 꼭 他三君(타삼군)과 共(공)히 맛나주시요. 나一人(일인)에 맛날時間(시간)으로 나와 共(공)히 他三君(타삼군)에도 맛나주는것이닛가 勿論時間( 물론시간)의 關係(관계)는 업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朝鮮人(조선인)임이 多少問題(다소문제) 일터이지마는 决(결)코 粗暴(조포)한 사람들이 아님을 나는 責任(책임)을 가지고 保證(보증)합니다.  總監(총감) “默黑點頭(묵점두)"?

三君(삼군)을 招(초)하야 結局四人(결국사인)으로 會見(회견)하였다. 

그 會見(회견)의 結果(결과) 我等(아등)의 追責(추책)과 抗議(항의)에 對(대)하야  彼(피)는 무어라고 말하였는지......(下略(하략)) 

時(시) 一九二七年十月二十八日(일구이칠년십월이십팔일)  午前十一時四十分( 오전십일시 사십분)으로부터 午後一時十五分(오후일시십오분)까지 處(처) 朝鮮總督府東京出張所總監室布施(조선총독부동경출장소총감실포시) 面會(면회)  求(구)한 것은 只今京(지금경) 城地方法院(성지방법원)에서 公判開廷中(공판 개정중)인 權五卨外百名(권오설외 백명)에 關(관)한 治安維持(치안유지)  法違反事件(법위반사건)의 辯護人(변호인)으로써 내가 渡鮮(도선)하야 滯在中法廷內外( 체재중법정내외)에 起(기)한 總督政治(총독정치)의○○에 就(취)하야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의 考慮(고려)와 反省(반성)과를 要求(요구)하고 십흔일이 잇기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 考慮(고려)와 反省(반성)과를 求(구)할 事實(사실)을 말하기 前(전)에  我等(마등)의 態度(태도)를 밝혀두겟슴니다. 

實狀(실상)은 내가 朝鮮(조선)에 가서 見聞(견문)한 朝鮮人諸君(조선인제군)의 總督政治(총독정치)에 對(대)한 생각으로 보면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面會(면 회)하야  總督政治(총독정치)의 ○○에 就(취)하야 考慮或(고려혹)은 反省(반성)을 求(구)한다는 것에 問題(문제)가 잇습니다.  그것은 共產黨事件(공산당사건)을 中心(중심)으로 惹起(야기)한 總督府(총독부)의 言論集會(언론집회)에 對(대)한 政治的禁止處分(정치적금지처분)은 總(총)히 壓迫(압박)할 方針(방침)에 基因(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잇습니다.  又(우) 내가 朝鮮(조선)에 가 잇슬대  煙草專賣局(연초전매국)의 合同問題(합동문제)가 잇섯고  驛前運送店(역전운송점)의 一驛一店問題(일역일점문제)가 잇섯스며 且水利組合(차수리조합)일에  對(대) 하여도 여러가지 運動(운동)이 잇섯스나 總督府(총독부)의 經濟的(경제적) 施設(시설)은 朝鮮人(조선인)으로부터 ○○할 수 잇는 것을○○하엿스면 그?이라는 方針(방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잇슴니다.故(고)로 그러한 經濟上政治上(경제 상정치상)의 統治方針(통치방침)을 定(정)하고 잇는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對(대)하야 엇더한○○的事實(적사실)이 잇다할지라도 그것을 提議(제의)하야  反省(반성)을 求(구)하는 것은 本來(본래)부터  不可能事(불가능사)이다.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는 그러한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考慮(고려)할만한 誠意(성의)를 認(인)치 안는다고 하는 생각임니다. 

나도 實際(실제)의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의 朝鮮統治方針(조선통치방침)은 거긔에 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總督府(총독부)의 朝鮮統治方針(조선통치방침)이거기에 잇스면 그것과 抗争(항쟁)하기 為(위)하여서도 한번은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에 會見(회견)하야  此(차)를 確實(확실)히 다진 後( 후) 그 抗爭態度(항쟁태도)를 宣言(선언)하는 것이 必要(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又多幸(우다행)히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의 생각은 그러케 甚(심)한 것이 아니요 잘못된 點(점)은 反省(반성)하고  疑心(의심)이 잇는 點(점)은 考慮(고려)를 한다고 하는 誠意(성의)가 잇다고 하면 한번 그 反省(반성)과 考慮(고려)를 求(구)하는 것이 人間的(인간적)의 態度(태도)이라고 생각함으로 會見(회견)을 求(구)한 것이외다 .

그럼으로 我等(아등)은 抗議的(할의적)으로 質問(질문)할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것침업시 틀린 點(점)은 틀렸다고 말하여 주고 釋明(석명) 할 일이 잇스면  釋明(석명)하여 주기를 바라며 考慮反省(고려반성)할 것이 잇스면 그 聲明(성명)을 하여 달라는 것을 몬저 諒解(양해) 하여 주시요

總監(총감) (諾(낙)) 

布施(포시) 第一(제일)  朝鮮(조선)의 問題(문제)에 對(대)하야 總督府當局(총독부당국)의 意見(의견)을 말하여 달라고 하는 問題(문제)는 만흐나 今日(금일)은 共產黨事件(공산당사건)을 中心(중심)으로한 問題(간제)에 限(한)하야 말합니다.  同事件(동사건)의 公判開廷後(공판개정후) 내가 朝鮮(조선)에 간 十月十八日(십월 십팔일)까지에 起(기)한 問題(문제)에 對(대)하여는 新聞(신문)으로도 勿論(물론) 아섯슬것이요.  總督府側(총독부측)의 通知(통지)도 잇섯스리라고 信(신) 합니다마는 그 間(간)에 取(취)한 總督府(총독부)의 處置(처치)는 總督(총독) 總監(총감) 警務局長共(경무국장공)히 不在中(부재중)이엇는데 總督總監警務局長等(총독 총감경무국장등)이 모다 指圖(지도)를 하고 指揮(지휘)를 하엿는지 或(혹)은 不在 (부재) 中(중)의 事(사)는 一切殘在(일절잔재)의 人等(인등)의 適(적) 宜(의)에  任(임)한다고하야 殘在(잔재)의 人等(인등)이 自由裁量(자유재량)을 한 事(사)인지를 듯고 십습니다 .

總監(촉감) 總督(총독)은 아시는 바와 갓치 "제네바의 軍縮會議出席後寧日(군축회의 출석후영일)이 업시 多忙(다망)하야 任地(임지)를 떠나잇섯고 나는 每年豫算提出(매년예산제출)을 爲(위)하야 요사이上京(상경)하여 잇게 되엿는데 今年(금년)은 植民地(식민지)의 豫算提出(예산제출)을 一個月(일개월)쯤 빨리하라는 內閣(내각)의 要望(요망)이 잇서서 任地(임지)를 떠나 잇섯고 아직 暫間(잠간) 여기 잇서야 되겟소. 淺利局長(천미국장)은 家庭(가정)에 問題(문제)가 잇서서 歸京(귀경)하여 잇슴으로 實狀(실상)은 三人(삼인)이 모다 한꺼번에 任地(임지)를 떠나려 하지 아니하였지마는 以上(이상)의 關係上(관계상) 떠난 것이외다. 

布施(포시) 저러한 大問題(대문제)가 잇슬때 總督(총독)도 總監(촉감)도 警務局長(경무국장)도 모다 떠난다는 것은 올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떠남에는 반드시 相當(상당)한 理由(이유)가 잇슬 것은 말은듯지안코라도 想像(상상)하고 잇슴니다.

그럼으로 나도그떠난理由(이유)를 붓는것은아님니다 不在中(부재중)에 共產黨事件(공산당사건)을中心(중심)하야 我等(아등) 이提議(제의)치안들수업는 總督府(총독부)의處置(처치)가 당신네의直接指揮(직접지휘) 로된것인지 不在中殘在(부재중잔재)의사 람들이自由裁量(자유재량)에出(출)한것인가 몬저그것을 

따라서 抗議(항의)의 責任(책임)을 明白(명백)히 하려 합니다.  總監(총감) 엇더한 事(사)를 提議(제의)하는 것인지 又(우) 엇더한 問題(문제)가 이러낫다고 하는 일에 對(대)하야 別般共產(별반공산) 黨事件(당사건)의 裁判(재 판)에 對(대)하야 指揮(지휘)를 請(청)한 事(사)도 업고 又指揮(우지휘)를 命(명)하여 온 일도 업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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