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 완료) 만인 주시 중의 고문경관 고소 (조선일보 1927.11.13.)

김찬휘
2025-04-03
조회수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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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 주시 중의 고문경관 고소

연일 계속 증인 신문

피소(被訴) 경관 취조 개시

2일에 걸쳐 두고 네 명의 경관 소환 신문(訊問)

주목 초점은 원교(元橋) 검사

 

조선공산당 사건의 피고인들이 경찰에서 취조를 받을 때에 종로경찰서 고등계 취조실(取調室)에서와 경기도 경찰부 숙직실에서 종로서 고등계 주임 삼륜(三輪, 미와) 경부 이하, 길야(吉野), 김면규(金冕圭)의 두 경부보와 대삼(大森, 오모리) 부장이 당시 피의자이든 전기 공산당사건 피고들에게 고문을 하였다하여 피고인 중 권오설(權五卨) 강달영(姜達永) 홍덕유(洪悳裕) 이준태(李凖泰) 전정관(全政琯)등의 다섯 사람이 전기 경관들을 상대로 폭행능학독직고소(暴行凌虐瀆職告訴) 한 것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원교(元橋, 모토하시)검사가 담당을 하였었는데 그동안 간도공산당(間島共產黨)과 징문맹휴생(徵文盟休生)의 구속 중인 사건을 먼저 처리하느라고 고소장(告訴狀)이 들어간 지 거의 한 달이 되도록 착수치 못하였다가 비로소 지난 9일에 이르러서 증인(證人) 강형순(姜亨順) 김영희(金英禧) 두 명을 소환하여 취조하고 이어 지난 11일에 또 홍덕유(洪悳裕) 전정관(全政琯)등의 증인 심문하기 위하여 원교검사가 김(金) 서기와 식산(植山) 통역을 대동하고 서대문형무소로 출장하였다함은 어제 신문에 보도하였거니와 서대문형무소로 출장하였든 원교검사는 동일 오후 3시경에 귀청한 후 즉시 전화로 종로서 길야(吉野) 경부보와 김면규(金冕圭) 경부보를 호출하여 비밀리에 장시간 취조를 한 모양이라더라.

 

삼륜(三輪),대삼(大森) 두 경관

비밀이 출두하여 취조 받아

 

이와 같이 증인 심문을 한 후에 시각을 옮기지 아니하고 귀청하는 길로 피 고소경관을 호출하여 취조한 원교검사는 12일 이른 아침 검사국에 등청(登廳)하자마자 다시 종로서로 전화를 걸어 이 고문고소사건의 중심 피고소인 삼륜(三輪) 경부와 대삼(大森) 부장을 호출하여 차례로 검사실에서 극비밀리에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신중한 취조를 한 후 돌려보냈는데 이로써 사건은 고소인(告訴人), 증인(證人), 피고소인(被告訴人) 등을 모두 한번 씩 취조한터인즉 머지않아 기소(起訴)가 되든지 혹은 불기소가 되든지 간에 좌우간 결말이 날 모양이라 하며 호출 낭하여 출두한 전기 두 경관은 재판소 유치장 옆에 있는 경비초소(경관힐소, 警官詰所)에 칩거하였다가 원교 씨의 취조를 받고는 다시 그 속으로 비밀히 자취를 감추어 번잡한 이목에 띄기를 몹시 꺼리는 모양이라더라.

 

 

이달내로 결말 경관취조는 하였으나

그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취조(取調) 마치고 원교검사 말

 

삼륜경부와 대삼부장이 신중한 취조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원교검사를 방문한 즉 아래와 같이 말하더라.

 

취조요? 하여 보았습니다마는 아직 그에 대하여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달 안에는 이것을 결말 지으려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증거인으로 말하더라도 좀 더 취조할 부분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나중에 보면 알 것을 미리 묻지 마시요.

 

증인의 증언 유력 피 묻은 의복(혈염의복, 血染衣服)이 고문증거?

담임 검사 태도를 주목

 

공산당 피고들이 종로 경찰서 삼륜경부(三輪警部)이하 경관 네 명에 대하여 원교검사가 증인심문을 계속 중이라 함은 여러 번 보도한 바 이거니와 증인 중에는 경관 고문한 사실에 대하야 유력한 증언을 하고 가족이 받아 온 피고의 의복에 피 묻은 것이 유력한 증거가 되어 원교검사도 지금 그 태도를 취하기에 고심 중이라더라.

 

옥구군 서수(瑞穗)청년회도 격려문 발송

 

공산당사건 공판이 개정되는 즉시부터 이사건 피고를 위하여 희생적으로 분투노력하여 오는 변호사단에 격려하는 글월과 감사하는 말이 뒤를 이어 국내와 해외로 부터 답지하였음은 연일신문 지상에 보도 되는 바이어니와 12일에도 공산당 담임 변호사단에 전북 옥구군(沃溝郡) 서수청년회(瑞穗靑年會)로부터 격려문이 또 도착하였다더라.


<원문>

만인주시중(萬人注視中)의 고문경관고소(拷問警官告訴)
연일계속(連日繼續)한 증인신문(證人訊問)
피소경관취조개시(被訴警官取調開始)
양일(兩日)을 두고 사경관소환신문(四警官召喚訊問)
주목초점(注目焦點)은 원교검사(元橋檢事)

조선공산당사건의 피고인들이 경찰에서 취됴를 바들때에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 고등계 취됴실(取調室)에서와 경긔도 경찰부 숙직실(京畿道警察部宿直室)에서 종로서 고등계 주임 삼륜(三輪)경부이하 길야(吉野) 김면규(金冕圭)의 량경부보와 대삼(大森)부장이당시 피의자(被疑者)이든  전긔 공산당사건 피고들에게 고문(拷問)을 하얏다하야 피고인 중 권오설(權五卨) 강달영(姜達永) 홍덕유(洪悳裕) 리준태(李凖泰) 전정관(全政琯)등의 다섯 사람이 전긔 경관들을 상대로 폭행릉학독직고소(暴行凌虐瀆職告訴)를 한것을 경성디방법원 검사국에서 원교(元橋)검사가 담당을 하얏섯는데 그동안 간도공산당(間島共產黨)과 휘분맹휴생 (징문맹휴생(徵文盟休生))의 구속(拘束)중인 사건을 먼저 처리하노라고 고소장(告訴狀)이 들어간지 거의 한달이 되도록 착수치 못하얏다가 비로소 지난 구일에 일으러서 증인(證人) 강형순(姜亨順) 김영희(金英禧)량씨를 소환(召喚)하야다가 취조하고 이어 지난 십일일에 또 홍덕유(洪悳裕) 전정관(全政琯)등의 증인 심문을 하기 위하야 원교검사가 김(金) 서긔와 식산(植山) 통역을 대동하고 서대문형무소로 출장하얏섯다함은 작지에 보도하얏거니와 서대문형무소로 출장하얏든 원교검사는 동일 오후 세시경에 귀텽(歸廳)한 후 즉시 뎐화로 종로서 길야(吉野)경부보와 김면규(金冕圭) 경부보를 호출하야다가 비밀리에 장시간 취됴를 한모양이라더라.


삼륜(三輪),대삼양경관(大森兩警官)
비밀이출두수조(秘密裡出頭受調)

이와가티 증인 심문을 한 후에 시각을 옴기지 아니하고 귀텽(歸廳))하는길로 피고소경관을호출하야취됴한원교검사는 십이일 일은 아츰 검사국에 등텽(登廳)하는 벽두에 다시 종로서로 뎐화를 걸어이 고문고소사건의 중심 피고소인 인 삼륜(三輪)경부와 대삼(大森)부장을 호출하야다가 차례로 검사실(檢事室)에서 극비밀리에 오전 열시 부터 동 열한시까지 신중한 취됴를  한후 돌려보냇는데 일로써 사건은 고소인(告訴人) 증인(證人) 피고소인(被告訴人)등을 모다 한번식 취됴한터인즉 머지아니하야 긔소起訴)가 되든지 혹은 불긔소가 되든지간에 좌우간 결말이날 모양이라 하며 호줄을 낭하야 출두한 전긔 두 경관은 재판소류치장(裁判所留置塲)엽헤 잇는 경관힐소(警官詰所)에 칩거(蟄居)하얏다가 원교씨의 취됴를 밧고는 다시 그 속으로 비밀히 자취를 감추어 번잡한 이목에 띄이기를 놉시끄리는 모양이엇더라.

금월내(今月內)에 결말(結末)
경관취됴는 하엿스나
그 내용은 말할 수 업다

◇…취조(取調) 마치고 원교검사담(元橋檢事談)

문경부와 대삼부장이 신중한 취됴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 경성디방법원 검사국으로 원교검사를 방문한 즉 알에와 가티 말하더라.

취됴요?하여 보앗습니다마는 아직 그에 대하야는 말할 수 업습니다. 아무러커나 이달 안에는 이것을 결말 지으려 하는데 엇더케 될는지 모르겟습니다. 증거인으로 말하더라도 좀더 취됴할 부분이 남어 잇기도 합니다. 나종에 보면 알 것을 미리 뭇지마시요.


증인(證人)의 증언유력(證言有力)
혈염의복(血染衣服)이 고문증거(拷問證據)?
담임검사태도(擔任檢事態度)를 주목(注目)

공산당 피고들이 종 경찰서 삼륜경부(三輪警部)이하 경관 네명에 대하야 원교검사가  증인심문을 계속중이라 함은 루보한 바 어니와 증인 중에는 경관고문한 사실에 대하야 유력한 증언을 하고 가족이 취하 바든 피고의 의복에 피무든 것이 유력한 증거가 되어 원교검사도 지금 그 태도를 뎡하기에 고심중이라더라.

서수청년(瑞穗靑年)도
격려문 발송

공산당사건공판이 개정되는 즉시부터 이사건 피고를 위하야 희생뎍으로 분투 로력하여 오는 변호사단에 격려하는 글발과 감사하는말이 뒤를 이어 해내 해외로 부터 답지하얏슴은 련일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바 어니와 십이일에도 공산당 담임 변호사단에 전북 옥구군(沃溝郡) 서수청년회(瑞穗靑年會)로부터 격려문이 또 도착하얏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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