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직(權五稷)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김찬휘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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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직은 권오설의 둘째 동생으로 9살 차이다. 1923년(17세)부터  청년운동 및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1924년 신흥청년동맹,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고려공산청년회 추천으로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파견되어 졸업했다. 고려공산청년회 재조직 임무를 띠고 1929년 국내에 잠입해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적극적인 반일운동을 전개하고 인천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3월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투옥되었다. 

[1930.3.17. 인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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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2.13. 인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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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 이후 경성콤그룹에 참여했다. 1940년 치안유지법으로 다시 검거되어 복역 중, 옥중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1941.5.13. 인물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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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후보위원, 재건된 조선공산당 정치국원,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 사장 겸 주간,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소위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으로 지명수배령이 떨어지자 월북했다. 

이북에서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을 지냈고 헝가리 공사, 중국 대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반당분자로 지목되어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1953년 당에서 제명되었으며 평안북도의 한 농장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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