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실
처음 입는 광복 (빙그레,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 권오설 선생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차가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모습이 옥중의 수형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영웅들을 위해, 광복을 전해 드립니다. - 수형사진 속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AI 기술로 복원하여 빛바랜 죄수복을 벗고 고운 한복을 입습니다. (빙그레.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 권오설 선생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차가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모습이 옥중의 수형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영웅들을 위해, 광복을 전해 드립니다. - 수형사진 속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AI 기술로 복원하여 빛바랜 죄수복을 벗고 고운 한복을 입습니다. (빙그레.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 권오상 선생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차가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모습이 옥중의 수형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영웅들을 위해, 광복을 전해 드립니다. - 수형사진 속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AI 기술로 복원하여 빛바랜 죄수복을 벗고 고운 한복을 입습니다. (빙그레.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 권오상 선생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채 차가운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운동가들. 마지막 모습이 옥중의 수형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영웅들을 위해, 광복을 전해 드립니다. - 수형사진 속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AI 기술로 복원하여 빛바랜 죄수복을 벗고 고운 한복을 입습니다. (빙그레. 국가보훈부)
처음 입는 광복 - 단체 사진
공훈전자사료관과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신 기록이 있는 독립운동가분들 중 수형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의 독립운동가분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처음 입는 광복 - 단체 사진공훈전자사료관과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신 기록이 있는 독립운동가분들 중 수형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의 독립운동가분들을 선정하였습니다
권오설 선생의 유적 - 철제관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2008년 이장 시 발견된 철제관의 모습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훈장증
권오설 훈장
권오설 훈장
권오설 선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권오설 선생의 생가 터
권오상 선생의 생가인 수곡고택의 한 켠. 현재는 밭이 되어 있다.
권오설 선생의 생가 터 권오상 선생의 생가인 수곡고택의 한 켠. 현재는 밭이 되어 있다.
권오설 선생의 생가 터
권오설 선생의 생가 터
권오설 선생의 생가 평면도
권오설 선생의 생가 평면도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수곡고택(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일길 78 )은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활동을 한 독립유공자 권준희 선생과 그의 손자로서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다 옥고를 치른 권오상 선생의 생가이다. 권준희는 1915년 7월 경북 대구에서 박상진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혐의로 1918년 체포되었다.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수곡고택(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일길 78 )은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활동을 한 독립유공자 권준희 선생과 그의 손자로서 6.10만세운동을 추진하다 옥고를 치른 권오상 선생의 생가이다. 권준희는 1915년 7월 경북 대구에서 박상진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한 혐의로 1918년 체포되었다.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권오상 선생의 생가 (수곡고택)
수곡고택 설명
수곡고택 설명
수곡고택 설명
수곡고택 설명
수고고택 설명
수고고택 설명
권오설 선생, 권오상 선생의 묘
권오설 선생의 묘
2008년 4월 이장 후 비로소 봉분을 쌓았다.
권오설 선생의 묘2008년 4월 이장 후 비로소 봉분을 쌓았다.
권오설 선생의 묘
권오설 선생의 묘
권오상(권오돈) 선생의 묘
권오상(권오돈) 선생의 묘
권오상(권오돈) 선생의 묘
권오상(권오돈) 선생의 묘
권오설 선생 풍산소작인회 활동지
권오설 선생 기적비 (가일마을 입구)
이곳은 일찍 민족해방투쟁의 가시밭길을 치달린 초인(超人)이 태어난 자리. 고귀(高貴)한 목숨을 바쳐 반제국권면복(反帝國權回復)의 횃불을 치켜든 애국열사가 자란 터전. 우리 민족사에 찬연한 광망(光芒)을 이루는 그 이름은 권오설(權五卨) 선생이다.
1897년 11월 25일 여기 안동(安東) 땅인 풍서면 가곡리에서 출생(出生)하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와 서울 중앙학교(中央學校)에서 수학한 바 있다. 기미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근무지 광주(光州)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구금‧투옥당했으며 1920년 향리에 자리를 잡고 서민대중의 교육계몽에 힘씀과 아울러 농민운동, 청년운동, 노동운동에 두루 관계했다. 원흥학교(元興學校)를 설립 운영하고 풍산(豐山)소작인회, 안동(安東)청년회,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에 참여한 것이 그 뚜렷한 자취다. 이때부터 민족해방투쟁의 동지요 전우가 된 분들 중에는 같은 안동 출신 김재봉(金在鳳), 이준태(李準泰), 김남수(金南秀)와 이곳 가일마을의 혈족(血族)인 권오상(權五尙), 권오운(權五雲) 등도 있었다.
1924년 국내와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서울에 상경, 화요회(火曜會)를 비롯해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 무산자동맹(無産者同盟) 등의 조직활동에 참여했으니 반제항일저항(反帝抗日抵抗)과 기아 빈궁에서 허덕이는 민중해방의 길이 그로써 이루어질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1925년 일제(日帝)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반제민중운동(反帝民衆運動)의 전위조직으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을 발족시켰다. 1차 지하당(1次地下黨)이 일제(日帝)의 검거 선풍으로 붕괴되자 교묘한 잠행으로써 2차 지하당(2次地下黨)을 조직‧가동시켰다.
1926년 거족적인 항일만세(抗日萬歲)를 기(期)한 6‧10만세운동(六十萬歲運動)에 임해서는 치밀한 거사계획을 세우고 선언문(宣言文), 태극기를 마련하는 등 빈틈없이 대사를 도모코자 했다. 그러나 이를 총독부 경찰이 탐지하는 바 되어 동지들과 함께 철창신세가 되었다. 일제(日帝)의 악법은 7년 구형에 5년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감옥 속에서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역사의 심판을 외쳐 마지않았다. 거듭된 악형에 1930년 4월 17일 일세(一世)의 애국지사(愛國志士)이며 절대의 민중운동자는 쇠창살 속에서 최후를 맞았다.
느껴워라, 미친 회오리바람에 불굴(不屈)의 혁명투사(革命鬪士) 쓰러짐이여. 통탄스러워라, 칠흑의 어둠을 물리쳐 역사의 새벽을 열려한 겨레의 큰 전선(戰線) 무너짐이여. 이제 선생(先生)이 가신지는 70여년이 흘렀다. 살아생전 그토록 열망한 평등평화통일조국(平等平和統一祖國)의 꿈은 아직도 영마루 너머 구름인 채 우리 국토는 분단되어 있고 역사는 뒤틀려 비틀거린다. 이 부끄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여기 돌을 세워 선생(先生)의 이름을 새김은 검수역산(劍樹力山) 무릅쓰고 조국(祖國)의 자유(自由)를 추구한 그 의기(意氣)가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이며 민중‧민족을 위하여 물불도 가리지 않았던 그 사상(思想)과 정신(精神)이 진실로 사무치게 그리운 까닭인 따름이다.
서기 2001년 11월 11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김용직(金容稷) 삼가 짓고
강원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황재국(黃在國) 삼가 쓰고
권오설선생기념비건립위원회(權五卨先生紀念碑建立委員會) 삼가 세우다
(참고) 이 비문을 지은 김용직 님은 비문에 언급된 김남수 선생의 아드님입니다.
안동 가일마을 (드론 촬영, 2015년)
권오설 88주기 89주기 추도식 자료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8주기 추도식 웹자보
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8.4.17.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8주기 추도식 웹자보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8.4.17.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9주기 추도식 리플렛
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9.4.17.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9주기 추도식 리플렛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9.4.17.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9주기 추도식 리플렛
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9.4.17.
경성트로이카프로젝트 주최, 권오설 89주기 추도식 리플렛장소: 서대문 형무소. 일시: 2019.4.17.
안동권씨 종보 제515호
두 곳에서 열린 권오설 선생 88주기 추도식 보도
안동권씨 종보 제515호두 곳에서 열린 권오설 선생 88주기 추도식 보도
권오설 선생의 학창시절 교과서
Notes on CROWN READERS No.2
영어교재
Notes on CROWN READERS No.2영어교재
고등보통학교 수신서(권4)
고등보통학교 수신서(권4)
농업 이과 교과서
조선총독부 편찬. 식물동물 및 인체생리
농업 이과 교과서조선총독부 편찬. 식물동물 및 인체생리
대수학
동경 성광관 발행
대수학동경 성광관 발행
대한지리
대한지리
리더의 요처정해
리더의 요처정해
산술 신 교과서
권오직 친필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동생 권오직의 책일 것으로 판단됨
산술 신 교과서권오직 친필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동생 권오직의 책일 것으로 판단됨
소설 강의
영어교재
소설 강의영어교재
신찬 소물리학
신찬 소물리학
영화 중사전
영어를 일본어(화)로 설명하는 사전
영화 중사전영어를 일본어(화)로 설명하는 사전
이상의 산술
이상의 산술
철학개론 개정판
철학개론 개정판
초등 본국(조선) 역사
초등 본국(조선) 역사
초등과 영어 강의록
초등과 영어 강의록
정정 산학통편(算學通編)
수학책
정정 산학통편(算學通編)수학책
권오설 선생 소장 잡지
공제 제2호(1920.10.11.) 1
1920년 설립된 최초의 전국적 노동 단체 '조선노동공제회'의 잡지. 조선 노동 공제회는 1920년 4월 11일 창립총회를 열고 회원 678명이 가입한 가운데 출범하였다. 창립총회에서 채택된 조선 노동 공제회 선언문에는 노동자들이 “민족적, 계급적으로 이중의 압박과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압박과 착취와 굴욕을 묵인하지 않는 무저항의 저항으로써 민족적, 계급적으로 해방될 때까지는 항상 임전의 태세로써 생활할 것을 각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제 제2호(1920.10.11.) 11920년 설립된 최초의 전국적 노동 단체 '조선노동공제회'의 잡지. 조선 노동 공제회는 1920년 4월 11일 창립총회를 열고 회원 678명이 가입한 가운데 출범하였다. 창립총회에서 채택된 조선 노동 공제회 선언문에는 노동자들이 “민족적, 계급적으로 이중의 압박과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압박과 착취와 굴욕을 묵인하지 않는 무저항의 저항으로써 민족적, 계급적으로 해방될 때까지는 항상 임전의 태세로써 생활할 것을 각오”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공제 제2호 2
공제 제2호 2
공제 제2호 3
공제 제2호 3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1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는 1906년 4월 설립된 애국계몽운동 단체로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이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윤효정, 장지연을 비롯한 개화 자강 계열 및 개신 유학적 인사들이 실력양성을 통한 자강독립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하였다. 대한자강회는 중앙에 본회와 전국에 25개 이상의 지회, 1,500명 내외의 회원을 가진 전국적 규모의 단체로서 임원진을 비롯한 주도 회원 중에는 과거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자강회는 설립된 지 1년 4개월 후인 1907년 8월 21일 보안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1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는 1906년 4월 설립된 애국계몽운동 단체로서,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이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윤효정, 장지연을 비롯한 개화 자강 계열 및 개신 유학적 인사들이 실력양성을 통한 자강독립의 실현을 목표로 결성하였다. 대한자강회는 중앙에 본회와 전국에 25개 이상의 지회, 1,500명 내외의 회원을 가진 전국적 규모의 단체로서 임원진을 비롯한 주도 회원 중에는 과거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자강회는 설립된 지 1년 4개월 후인 1907년 8월 21일 보안법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2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2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3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3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4
대한자강회 월보 제2호(1906.08.25.) 4
대한자강회 월보 제10호(1907.04.25)
대한자강회 월보 제10호(1907.04.25)
대한자강회 월보 제12호(1907.06.25)
대한자강회 월보 제12호(1907.06.25)
대한자강회 월보 제13호(최종호, 1907.07.25)
대한자강회 월보 제13호(최종호, 1907.07.25)
대한협회회보 제2호(1908.05.25) 1
대한협회는 1907년 11월에 서울에서 조직되어 1910년 9월 국권피탈 직후까지 활동한 정치단체이다. 일제 통감부에 의해 대한자강회가 강제 해산된 후, 이토 히로부미의 허락을 얻어 대한자강회 간부들과 천도교의 대표 등을 추가하여 조직하였다. 사무소는 서울 탑동에 있었고, 회원은 약 5,000명이었으며, 전국에 37개 지회가 있었다. 1908년에 기사 스케고로가 고문으로 선출되면서 협회의 성격이 크게 변하였다. 특히 대한협회의 지도부는 의병과 같은 무장투쟁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며 일본의 한국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대한협회회보 제2호(1908.05.25) 1대한협회는 1907년 11월에 서울에서 조직되어 1910년 9월 국권피탈 직후까지 활동한 정치단체이다. 일제 통감부에 의해 대한자강회가 강제 해산된 후, 이토 히로부미의 허락을 얻어 대한자강회 간부들과 천도교의 대표 등을 추가하여 조직하였다. 사무소는 서울 탑동에 있었고, 회원은 약 5,000명이었으며, 전국에 37개 지회가 있었다. 1908년에 기사 스케고로가 고문으로 선출되면서 협회의 성격이 크게 변하였다. 특히 대한협회의 지도부는 의병과 같은 무장투쟁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며 일본의 한국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대한협회회보 제2호(1908.05.25) 2
대한협회회보 제2호(1908.05.25) 2
대한협회회보 제5호(1908.08.25)
대한협회회보 제5호(1908.08.25)
대한협회회보 제12호(최종호, 1909.03.25.) 1
대한협회회보 제12호(최종호, 1909.03.25.) 1
교남교육회 잡지 2호(1909.05.25.)
교남교육회는 1908년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1909년 2월 10일에는 교남교육회 안동지회도 설립되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11월까지는 유지되었으나 해산당하였다.
교남교육회 잡지 2호(1909.05.25.)교남교육회는 1908년 영남 지역의 교육 진흥을 위하여 서울에 거주하는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인사들이 설립한 교육운동 단체이자 애국 계몽 단체였다. 1개 면에 1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설립된 교남교육회는 ‘교남학회’라고도 하였다. 1909년 2월 10일에는 교남교육회 안동지회도 설립되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11월까지는 유지되었으나 해산당하였다.
교남교육회 잡지 4호(1909.07.25.)
교남교육회 잡지 4호(1909.07.25.)
교남교육회 잡지 9호(1910.01.25.)
교남교육회 잡지 9호(1910.01.25.)
교남교육회 잡지 10호(1910.03.25.)
교남교육회 잡지 10호(1910.03.25.)
교남교육회 잡지 12호(최종호, 1910.05.25.)
교남교육회 잡지 12호(최종호, 1910.05.25.)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1책
동국통감(東國通鑑). 조선 세조 9년(1463)에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의 명을 받아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16년(1485)에 완성한 관찬 역사서. 단군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했으며 총 56권 28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1책동국통감(東國通鑑). 조선 세조 9년(1463)에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의 명을 받아 편찬을 시작하여 성종 16년(1485)에 완성한 관찬 역사서. 단군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했으며 총 56권 28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었다.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3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3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4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4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5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5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6책
중간 동국통감 낙질본 - 제6책
권오설 선생의 종교 관련 서적
구약 전서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 태동기와 조선공산당 초기에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싸웠다. '야만 미개' 나라의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기독교 선교사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고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 역할을 하는 측면을 고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공산당 운동이 발전하면서 민족협동전선의 필요성을 중요시했고, 비타협적 기독교와의 연대를 실천했다.
구약 전서조선의 사회주의 운동 태동기와 조선공산당 초기에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싸웠다. '야만 미개' 나라의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구실로 기독교 선교사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고 제국주의 침략의 첨병 역할을 하는 측면을 고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공산당 운동이 발전하면서 민족협동전선의 필요성을 중요시했고, 비타협적 기독교와의 연대를 실천했다.
기독교의 우주관과 인생관
기독교의 우주관과 인생관
신약 전서
신약 전서
조선불교약사
조계종 승려이자 불교학자였던 권상로의 저술 <조선불교약사>(1917년)는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진 최초의 한국불교 역사서이다.
조선불교약사조계종 승려이자 불교학자였던 권상로의 저술 <조선불교약사>(1917년)는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진 최초의 한국불교 역사서이다.
삼일신고
삼일신고(三弌𥛠誥, 三一神誥)는 대종교의 경전으로 환웅의 가르침을 새겨 전한 것이라고 한다. 1906년 음력 12월30일 나철(羅喆)이 백봉대종사의 제자 백전노인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성세영의 《본사행일기(本司行日記)》는 1922년 10월 10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성주에서 출발해 경성의 대종교남도본사를 방문한 내용을 적은 일기인데, 이 자료에는 권오설을 비롯해 안동지역 대종교인 30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삼일신고삼일신고(三弌𥛠誥, 三一神誥)는 대종교의 경전으로 환웅의 가르침을 새겨 전한 것이라고 한다. 1906년 음력 12월30일 나철(羅喆)이 백봉대종사의 제자 백전노인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성세영의 《본사행일기(本司行日記)》는 1922년 10월 10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성주에서 출발해 경성의 대종교남도본사를 방문한 내용을 적은 일기인데, 이 자료에는 권오설을 비롯해 안동지역 대종교인 30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권오설 선생 소장 기타 서적
육법전서
육법전서
사기 국자해
사마천의 사기, 한글 해설서
사기 국자해사마천의 사기, 한글 해설서
슈미트본 걸작집 (소설모음)
슈미트본 걸작집 (소설모음)
옥중의 고백
옥중의 고백
복사편전장(서간집)
복사편전장(서간집)
피봉(皮封, 봉투의 겉면)과 간찰(簡札, 편지)
권오기(동생) 전보 피봉 (1927년)
권오기(동생) 전보 피봉 (1927년)
권오기(동생) 피봉
권오기(동생) 피봉
권오설 간찰
권오설 간찰
북간도대성중학교 후원회 통지문
북간도대성중학교 후원회 통지문
조선 대전명소회 엽서 피봉
조선 대전명소회 엽서 피봉
큰 동생 권오기(權五夔 )가 쓴 권오설 선생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