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운동 이후 조선 초유의 비밀결사 사건 (동아일보 1927.04.03.)

김찬휘
2024-08-24
조회수 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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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운동 이후 조선 초유의 비밀 결사 사건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내용

어제 2일 일부 해금

파문 국제적=전후 4차 검거

사건 발생에서 예심 종결까지 연수로 3년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난 이후로 처음 있는 대 검거 사건이라고 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고 노농러시아의 동방 적화운동에 일종의 자극을 주고 다시 100만의 당원을 가진 국제공산당의 근본방침에까지 치명적 영향을 끼친 조선공산당 밋 고려공산청년회의 대 검거사건은 재작년 즉 대정십사년(1925년) 11월 26일 신의주에서 변호사 구타상해사건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자 검거가 발단으로 다시 작년 대정 십오년(1926년) 6월 6일에 순종효황제 장례 당일을 기약하여 진행코자하던 고려공산청년회 사건 검거와 이어 동년 9월 8일 제4회 검거로 검사국에 송치한 것을 최종으로 우선 수사와 검거의 일단락을 고하게 되어 햇수로 3년에 만 16개월에 걸친 많은 일자를 허비하여 동경 경시청을 비롯하여 시내 종로서 외 전조선 30여 경찰이 대 활동을 개시해 가지고 경성을 중심으로 신의주, 원산, 마산 등지를 비롯하여 전조선 각지에서 관계자 100여명을 검거하며 한편으로 신문지상의 동사건 관계 기사 일체를 게재 금지까지 한 후 계속하여 경성지방법원 예심계에서 오졍 예심판사의 손으로 예심 중에 있더니 어제 보도와 같이 지난 31일에 예심이 종결되는 동시에 경무국에서는 어제 2일 오전 11시에 동사건 내용 일부에 대한 신문 게재 해금을 하였다.

 

새해 시작부터(劈頭) 조직은 아서원서 밀의

재작년 4월 17일 오후 1시

제1차 조선공산당

 

피고들 중에 김재봉(金在鳳) 김두전(金抖全- 약수(若水) 유진희(俞鎭熙) 권오설(權五卨) 김상주(金尚珠) 진병기(陳秉基) 주종건(朱鍾建) 윤덕병(尹惠炳) 송봉우(宋奉璃) 독고전( 獨孤侄) 홍혜유(洪惠裕) 조봉암(曹奉岩) 김찬(金燦) 조동우(趙東祐) 등은 재작년 4월 17일 오후 1시 경에 시내 황금정 아서원이란 중국 요리집에 모여 조선을 일본의 기반(羅鮮))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조선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적으로 조선 공산당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조동우(趙東祐) 조봉암(曹奉岩) 김찬(金燦) 등 세 사람을 전형위원으로 선거하여 그 사람들로 하여금 김재봉(金在鳳) 김두전(金抖全) 유진희(俞鎭熙) 주종건(朱鍾建) 조동우(趙東祐) 정운해(鄭雲海) 김찬(金燦) 등 일곱 사람을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하는 동시에

 

윤덕병(尹德炳) 송봉우(宋奉璃) 조봉암(曹奉岩) 등 세 사람을 검사위원으로 선임하게 한 후 중앙집행 위원에 대하여 조선 공산상의 직제 및 당칙의 제정 기타 일절을 위탁하였던 바 중앙집행 위원 일곱 사람은 그 달 하순에 두 번이나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비서부 조직부 선전부 등 3부를 설치하여 각 사무를 분담하게 되었다.

  

신의주 사건 후 범위를 더 확장

실패를 거울 삼아 또다시 활동

제 2차로 내외 연락

  

이리하여 그들은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산당과 연락을 취한 후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 당원을 모집 하고자 활동을 개시하여 여러 가지로 책동하던 중에 평북 신의주 경찰서의 탐지한 바가 되어 그 당원이 계속 잡히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됨에 조선공산당은 장차 와해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는데 김재봉(金在鳳) 김찬(金燦) 등은 이것을 근심하여 재작년 12월 경에 시내 수창동 모처에서 그 당원 강달영(姜達永) 이준태(李準泰) 이봉수(李鳳沫) 김철수(金綴沫) 홍남표(洪南杓) 등 여러 사람과 같이 동 공산당 간부에게 그 당의 기초 만회를 종용한 결과 그들은 김정관(金政現) 권오설(權五卨) 등과 같이 중앙집행위원이 되어가지고 시내종로 육정목 모처에서 여러 번 비밀히 회합하여 협의한 결과 경성부내에 있는 9개의 세포단체 야치이키와 다섯 개의 부라치크와 동경에는 일본부 중국 상해에는 상해부 만주에는 만주부 러시아 해삼위에는 연해주부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예산안 기타 여러 가지를 제정하고 예산에 관한 것은 국제공산당에 송치하는 한편으로 당원을 모집하고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여러 곳에 도지부를 설립하는 등 조선 공산당의 발전을 위하여 활동 노력하였다.

  

동지를 규합하고 전조선 연락

제3차로 세포단체

 

이렇게 공산당의 주동자들이 활동을 개시하니 뜻이 서로 같은 동지들이 모여들게 되었으니

廉昌烈(염창렬)、朴來源(박내원)、朴珉英(박민영)、李智鐸(이지탁)、閔昌植(민창식)、金環載(김경재)、朴台弘(박나홍)、金正奎(김정규)、朴一秉(박일병)、金昌俊(김창준)、魚秀甲((어수갑) 李相熏(이상훈)、金東富(김동부)、李忠模(이충모)、李在益(이재익)、 具昌會(구창회)、李殷植(리은식)、柳淵和(류연화)、高允相(고윤상)、李奎榮(이규영)、姜均煥(강균환)、李(리)?????、金演義(김연희)、裴成龍(배성룡)、李承燁(이승엽)、朴泰善(박태선) 金有聲(김유성)、裴致文(배치문)、南海龍(남해용)、愼杓晟(신표성)、趙東爀(조동혁)、李敏行(이민행)、曹俊基(조준기)、趙鏞(조 용)??????、薛炳(설병)???????、權五尙(권오상)、李奭(이석)、蔡奎恒(채규항)、都容(도용)????????、李炳立(이병립)、鄭晋武(정진무) 白光欽(백광흠)、辛命俊(신명준)、金完根(김완근)、盧相烈(노상렬)、崔安燮(최안섭)、權榮奎(권영규)、韓廷植(한정식)、 吳淇燮(오기섭)、李榮泯(이영민)、李昌洙(이창수)、朴炳斗(박병두), 李壽延(이수연)

 

등이 그 당에 가입하게 되자

 

金明奎(김명규) 朴台弘(박태홍) 두 사람은 경상남도 집행위원으로 되고 신명준(辛命俊)은 전라남도집행위원으로 되었으며 김정규(金正奎)는 일본부의 책임간부로 임명되었는데 신명준은 申東(신동)??? 金基洙(김기수) 등과 그 당의 목적을 실행코자하여 光州(광주) 順天(순천) 光陽(광양)등 세 곳에 『야체이카』를 조직 활동하였다. 그리고 金明奎(김명규)、黃守龍(황수용)、金尙珠(김상주)、金直成(김직성)、金琪鎬(김기호)、金炯善(김형선) 등이 대정 십삼년(1924년) 8월 17일에 조선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제도의 실현을 기하는 목적으로 조직한 마산공산당도 조선공산당에 병합하기로 결의하고 명칭을 조선공산당 마산 「야체이카」로 변경하였음으로 조전공산당은 차차 그 기초가 확대하게 되었다.

 

6월사건의 진상

제 1차로 민족 운동 획책

 

이렇게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조직되어 전조선 각지에 비밀히 뿌리가 뻗어나가게 될 때에 창덕궁 순종께서 승하 하시게 되어 전조선 인심이 비통에 싸이게 되었다. 이에 權五卨(권오설)、金丹冶(김단야)、朴來源(박래원)、閔昌植(민창식)、楊在植(양재식)、李用宰(이용재) 등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순종효황제의 국장 당일에 조선○○에 관한 과격문서를 인쇄 살포하여서 ○○운동을 일으키고자 계획하고 權五卨(권오설)은 작년 5월 15일경에 시내 장사동 52번지 이수원(李壽元)의 집에서 격고문(檄告文) (내용은 아직 금지중이라 제한 과격한 문서)의 원고를 작성하고 朴來源(박내원)、閔昌植(민창식)、楊在植(양재식)、李用宰(이용재) 등은 동 17일부터 시내 안국동 36번지, 기타 지역에서 그 격고문 2만 2천장을 비밀히 인쇄하여 백명텬(白明天)이가 조각한 ○○독립당이란 인장을 찍고 金丹冶(김단야)가 부쳐 보낸 『곡복민 격(檄)함 =내용은 아직 금지중이라는 과격문서를 합하여 가지고 호남선 경부선 경원선 경의선 등 네 방면의 철도편으로 부치고 朴來源(박래원)은 호남선 경부선 방면의 중심지인 대전에 잠복하고 閔昌植(민창식)은 경의선 방면의 중심지 사리원 평양 경원선 방면의 중심 원산에 잠복하여 이것을 각도 각지에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내용이 과격할 뿐 아니라 경계가 엄중한 국상 당시의 일임으로 그들은 비밀문서를 발송하기에 비상하고 심하여 벌써 발행 금지가 된 개벽과 기타 신여성, 신민 등 여러 가지 잡지에다가 이 과격문서 몇 장씩 넣어가지고 각 도청 기타 관공서와 지방청년단체에 대하여 비밀히 발송하고 혹은 朴來源(박래원) 閔昌植(민창식) 李用宰(이용재) 楊在植(양재식) 등이 상점의 광고지 모양으로 이 격문서를 광고 우편으로 총독부 재판소를 비롯하여 기타 중요한 관청에 발송하였으며 그 나머지를 가지고 6월 10일 국장당일에 학생 인쇄직공 양말직공 등과 서로 호응하여 장례가 통과할 때에 격문서를 뿌리며 조선○○ 만세를 불러 운동을 시작하고자 계획하였든 것이다.

 

투사를 양성하려 해외에 20명

 

조선공산당이 조직되던 때와 거의 동시인 작년 4월 18일 오후 7시 경에는 朴憲永(박헌영) 權五卨 (권오설) 林元根(임원근) 林亨寬(임형관) 金尙珠(김상주) 曹利煥(조이환) 朴吉陽(박길양) 洪瑜植(홍회식) 申哲洙(신철수) 張順明(장순명) 金丹冶(김단야) 金燦(김찬) 曹奉岩(조봉암) 鄭敬昌(정경창) 安相薰(안상훈) 金東明(김동명) 陳秉基(진병기) 등은 시내 훈명동 박헌영(朴憲永)의 집에 모여 가지고 역시 조선을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적으로 고려공산청년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朴憲永(박헌영) 曹奉岩(조봉암) 洪瑜植(홍회식) 등 세 사람이 전형위원(銓衡委員)이 되어가지고 朴憲永(박헌영) 權五卨(권오설) 洪瑜植(홍회식) 申哲洙(신철수) 曹奉岩(조봉암) 金燦(김찬) 金丹冶(김단야) 등 일곱 사람을 중앙집행위원으로, 曹利煥(조이환) 林亨寬(임형관) 金東明(김동명) 등 세사람을 검사위원으로 선임한 후 고려공산청년회의 직제(職制) 회칙(會則) 강령(綱領)등을 일체 위임하였다는 바 중앙집행위원들은 여러번 회의를 개최하고 비서부 선전부 조직부 등을 설치하여 사무를 분담하고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공산청년회와 연락을 취하여 회원을 모집하는 한편으로 장래 공산주의 선전의 투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모스크바」공산학교에 안상훈(安相勳)외 20명의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이렇게 활동을 계속하는 중에 비밀결사의 내용이 별항과 같이 신의주 변호사 구타사건으로 경찰당국에 발각되어 회원 중 중요인물이 속속 검거를 당하게 되었으므로 권오설(權五卨)은 그 회의 전도를 염려하여 廉昌烈(염창렬) 朴珉英(박민영) 李智鐸(이지탁) 金環載(김경재) 李炳立(이병립) 등과 의논한 후 그들을 모두 중앙집행위원 후보자로 선거한 후 작년 12월 이후 여러 번 시내 수창동 97번지 조두선(趙斗先)의 집 및 기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영국무산청년회의 회칙이라고 하는 고려공산 청년회의 회칙을 만들어가지고 그 발전에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朴來源(박래원) 閔昌植(민창식) 高允相(고윤상) 權五卨(권오설) 崔安變(최안섭) 盧相烈(노상렬) 鄭淳悌(정순제) 崔一奉(최일봉) 鄭順和(정순화) 鄭泰重(정태중) 許永壽(허영수) 金載中(김재중) 鄭洪模(정홍모) 등 여러 사람이 입회하여 광주 순천 구례 광양 등 네 곳에 고려공산청년회의 『야체이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黃守龍(황수용) 金尙珠(김상주) 金直成(김직성) 金炯善(김형선) 등이 대정 십삼년(1924년) 8월 5일에 조직한 마산공산청년회(가 역시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하게 되어 고려공산청년회로 차차 뿌리를 잡게 되었다.

  

피고 99명

 * 본적 -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주거 - 경성부 장사동 52번지 박영옥 방. 무직. 권오설(30)

* 본적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명 신양동. 주거 - 경성부 훈정동 4번지. 무직. 박헌영(27)

* 본적 - 경기도 개성군 임한면 하조 강리. 주거 - 경성부 관철동119번지. 신문기자. 임원근(28)

* 본적 - 평안북도 의주군 가산면 옥강동. 주거 - 동도 신의주부 매지정 2번지. 신문기자. 임형관(25)

* 본적 - 경기도 강화군 부내면 관청리. 주거 - 우측 장소. 시대일보 강화지국장. 박길양(33)

* 본적 - 경북 대구부 덕산정. 주거 - 본적과 동일. 무직. 신철수(24)

* 본적 - 함남 원산부 룡동. 주거 - 경기도 인천부 금곡리 16번지. 무직. 장순명(28)

* 본적 - 경기도 고양군 룡강명 동막상리. 주거 - 경성부 관훈동 32번지. 무직. 홍증식(32)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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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각 단서와 검거되던 전후의 전말

변호사 구타로 명부가 발각

가택을 수색하여 문서 압수

처음은 상해죄로 검거


 제1차 별항사건이 발단된 단서는 재작년 대정 십사년(1925년) 4월 경성에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조직되자 두 단체의 관계는 국제 당규에 의하여 고려공산청년회는 조선공산당으로부터 외적으로도 간섭을 받아가며 사업을 진행하던 중 고려공산 청년회는 그해 5월에 조봉암(曹奉岩)을 러시아에 밀파하여 국제공산당에 가맹하여 결국 승인을 받아 비밀히 활동하던 중 때마침 재작년 11월 26일 신의주에서 신만청년회원(新灣青年會員) 25명이 노상정 경성호텔에서 간친회를 열었는데 청년회 중모가 참석한 변호사를 때린 일이 있다. 그 일로 신의주경찰서에서는 제일 먼저 신의주부 운정정(雲井町) 4번지 김경서(金璟瑞)를 검거하여 구타죄(歐打罪)로 취조하는 한편으로 김경서의 가택을 또 수색하자 뜻밖에 「모스크바」공산대학에 보낸 학생 21명의 신분조사서와 보고서외 기타 비밀서류를 발견하고 신의주서 계원이 급히 경성으로 올라와 종로경찰서의 응원을 받아 조선공산당 측의 박헌영(朴憲永)외 다섯 명과 고려공산청년회 측의 이십 명을 검거하게 되었던 바 최고 간부인 김단야(金丹冶) 김찬(金燦) 김동명(金東明) 권오설(權五卨) 등은 해외로 탈주하여 버렸더라.

 

 

 

제 2차 얼마 후 작년 5월 순종효황제 인산(因山)을 기회로 모 운동을 일으키려고 인쇄한 격문(檄文)을 발각한 경기도 경찰부가 중심으로 천도교간부와 그 외 수십 명을 검속하는 한편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청년들을 검거하던 중 동 6월 7일 오후 1시에 모처에서 권오설(權五卨)(도망갔다 또다시 들어와 있던 중)을 검거하게 되자 사건의 일부분이 발각되어 제2차로 30여 명을 검거하였더라.

  

제3차 종로서는 동 사건을 취조하며 또 한편으로 7월 19일 시내 명치정에서 최고 간부 책임 비서 강달영(姜達永)(三九)를 검거하는 동시에 홍남표(洪南杓)집에서 비상한 암호서류를 압수하게 되자 전후 사건의 내용 전체가 드러나 제 3차로 전 조선을 통하여 당원 132명을 검거하여 취조되는 대로 8월 28일과 9월 1일과 9월 7일 전후 세 번에 난 우원 사건을 검사국으로 넘기게 된 것이더라.

 

암호로 통신, 변장으로 활동

모든 문서가 암호와 부호 뿐

 

종로 경찰서에서는 공산당원이라는 주목을 하던 이준태(李準泰) 이상훈(李相薰) 박순병(朴純秉)의 세 명에 대하여 엄중히 취조하는 한편으로 강달영(姜達求)을 체포키 위하여 20여 명의 형사가 밤낮 없이 활동한 결과 결국 7월 17일 명치정 입구에서 과실 장사로 변장하고 있는 것을 체포하고 전기 세 명의 혐의자와 같이 엄중히 심문을 한 결과 결국 18일에 자백을 받어 비밀문서의 소재도 알고 공산당 사건의 사실도 탐사하고 이에 의지하여 19일 새벽부터 공산당 사건의 대 검거를 시작하여 그날 오후 3시에 입정정 135번지 하숙에 투숙 중인 보성고등보통학교 생도 전현철(全鉉哲)에게 맡겨둔 검정 가죽가방 한 개를 압수하여 그 안에 비장한 공문 규칙과 「모스코바』에 보내는 보고서와 상해연락부에 보내는 통신문 선전문 예산안 기타 통신문 등 합계 30여 종의 기밀서류와 돌로 새긴 공산당인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 비밀문서 등은 전부 부호와 암호로 기재하였음으로 삼륜(三輪) 고등 주임 길야(吉野)경부보 대삼(大森) 김(金), 류(劉)의 세 형사부장과 한(韓)형사 등이 조선 고래의 문자사용법과 변태언문(變態諺文) 기타 고문서 등에 의지하여 연구하여 55시간 만에 알아내고 21일 밤에 겨우 번역을 하여 놓은 후에 22 일부터 다시 체포를 시작하여 시내 45개 처에서 경계망을 치고 동경경시형 외 30경찰서에 의뢰 전보를 처서 시내에서 26명 지방에서 17명 합계 43명을 체포하고 엄중히 심문을 하여 취조를 마치고 8월 10일 강달영 이준태 김연희 등 43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검사국으로 넘기고 8월 18일부터 다시 활동을 하여 각지에서 도 간부 이하 지방당원 43명 중 28명은 8월 31일 9월 8일 두 차례에 나누어 검사국에 보냈더라.

  

각 피고에 적용 법률

 

金在鳳(김재봉)、金若水(김약수) (金科全(김두전) 俞鎭熙(유진희)、權五卨(권오설)、金尙珠(김상주)、陳秉基(진병기)、朱鍾建 (주종건)、尹德炳(윤덕병)、宋奉瑀(송봉우)、獨孤佺(독고전 ), 洪惠裕(홍덕유)、林元根(임원근)、林亨寬(임형관)、曹利煥(조이환)、朴吉陽(박길양)、洪瑜植(홍유식)、申哲洙(신철수)、張順明(장순명)、金正奎(김정규)、黃守龍(황수용)、金直成(김직성) 金琫鎬(김봉호) 등의 비밀결사 조직의 행위는 치안유지법 제1조 제1항 목적의 실행에 관하여 행한 행위는 치안유지법 제2조

 

姜達永(강달영)、李準泰(이준태)、李鳳洙(이봉수)、金政琯(김정관)、李炳立(이병립)、崔安燮(최안섭)、盧相烈(노상렬)、辛命俊(신명준)、鄭淳悌(정순제)、李智鐸(이지탁)、金璟載(김경재) 彭三辰(팽삼신)、金宗信(김종신) 등이 비밀결사의 내용을 알고 가입한 행위는 치안유지법 제1조 제1항 목적의 실행에 관하여 행한 행위는 치안유지법 제2조

 

權五卨(권오설)、廉昌烈(염창렬)、朴東源(박동원)、朴珉英(박민영)、閔昌植(민창식)、朴台弘(박태홍)、金正奎(김정규)、朴一秉(박일병)、金昌俊(김창준)、魚秀甲(어수갑)、李圭熏(이규훈)、 金東富(김동부)、李忠模(이충모)、李在益(이재익)、具昌會(구창회)、李殷植(이은식)、柳淵和(유연화)、高允相(고윤상)、李奎采(리규채)、姜均煥(강균환)、李(이)???、金演義(김연희)、 (배성용)、李承燁(이승엽)、朴泰喜(박태희)、金有聲(김유성)、 裵致文(배치문)、南海龍(남해용)、愼杓晟(신표성)、趙東爀(조동혁)、李敏行(이민행)、曹俊基(조준기)、趙鏞(조용)、薛炳明(설병명)????、李奭(이석)、蔡奎恒(채규항)、都容(도용)?????、鄭晋武(정진무)、白光欽(백광흠)、金奎(김규)、金成珠(김성주)、 金琪鎬(김기호)、權榮奎(권영규)、韓廷植(한정식)、吳基燮(오기섭)、金完根(김완근)、李榮珉(이영민)、李昌洙(이창수)、朴炳斗(박병두)、李壽延(이수연)、鄭洪模(정홍모)、崔一章(최일봉)、 鄭順和(정순화)、鄭泰重(정태중)、許永壽(허영수)、金載中(김재중)、姜宗祿(강종녹)、尹允三(윤윤삼)、金容燦(김용찬)、李鳳洙(이봉수) 등은 비밀결사의 내용을 알고 가입한 행위는 치안유지법 제3조 제1항

 

權五卨(권오설)、朴來源(박내원)、閔昌植(민창식)、楊在植(양재식)、李用宰(이용재) 등의 안녕질서를 방해코자하는 행위는 대정 팔년(1919년) 칙령 제7호 제1조 제1항 불온문서 출판의 행위는 출판법 제11조 제1항

 

洪德裕(홍덕유)는 명예훼손의 행위는 형법 제230조에 각각 해당하는 바로 피고 등의 행위 중에는 연속적 범죄와 일개의 행위로 여러 가지 죄명에 저촉되며 또는 재범과 병합죄에 걸리는 행위임으로 형법 제55조 제54조 제1항과 제57조 제47조 제10조로 적당히 처단할 자이라 하여 형사 소송법 제 320조에 의하여 공판에 부쳤다하며

 

李榮珉(이영민)、李昌洙(이창수)、朴炳斗(박병두)는 대정 십사년(1925년) 9월 이후 대정 십오년(1926년) 6월까지 순천군 순천면 행정 농민연합회관에서 일본의 국체를 변혁하고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목적으로써 순천농민연합회 무산동맹 등을 조직 활동한 것은 공판에 부칠만한 혐의가 충분치 못하나 피고 등에 대한 전기 범죄와 관계가 있다하여 기소하였다 하며

 

金景瑞(김경서)、趙東根(조동근)이 고려공산청년회에 입회하여 신의주나 혹은 안동현에 집을 두고 청년회본부와 국외에 파견한 공산청년회원 조봉암과 사이에 연락을 취하였으며 金世淵(김세연) 金英禧(김영희)는 대정 십사년(1925년) 4월경까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고 金景瑞(김경서) 獨孤佺(독고전)은 대정 십사년(1925년) 11월 22일 신의주부내 경성식당에서 박유정(朴有楨) 기타를 구타하여 안경과 시계를 깼다는 사실은 형사 소송법 제33조에 의하여 면소하였다하며 피고 권오설과 박헌영(朴憲永) 기타 몇 사람과 같이 의논한 후 대정 십사년(1925년) 4월 8일 박헌영의 집에서 일본국체를 변혁하고 사유재산을 부인할 목적으로써 고려공산청년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그 실행을 위하여 찬동하였다는 것이라 하더라.

 

 <원문>

件事社結密秘의有初鮮朝後以動運未已

기미운동 이후 조선 초유의 비밀 결사 사건


조선공산당. 고려공산청년회 내용 

작(어제) 2일 일부 해금


波紋(파문)을 國際的(국제적)=前後四次檢擧(전후사차검거)

事件發生(사건발생)으로 资蕃終組(예심 종결)까지 年數(연수)로  三年(3년)

공산주의운동이 이러난 이래로 처음되는 대검거사건이라고 하야 셰상의 이목을 끌고 로농로셔아의 동방적화운동에 일종의 자극을 주고 다시 백만의 당원을 가진 국제공산당의 근본방침에까지 치명뎍 영향을 끼친 됴선공산당과 밋 고려공산청년회의 대검거사건은 재작년 즉 대졍십사년십일월이십륙일 신의주에서 변호사 구타상해사건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자 검거가 발단으로 다시 작년대졍십오년륙월륙일에 순종효황뎨 구장 당일을 긔약하야 진행코자하든 고려공산청년회 사건 검거와 이어 동년 9월 8일 뎨사회검거로 검사국에 송치한 것을 최종으로 위선수사와 검거의 일단락을 고하게되어 햇수로 삼년에 만십륙개월에 긍한 만흔일자를 허비하야 동경경시텽을 비롯하야 시내 종로서외 전됴선 삼십여 경찰이 대활동을 개시해 가지고 경셩을 즁심으로 신의주 원산 마산 등디를 비롯하야 젼됴선 각디에서 관게자 백여명을 검거하며 일변으로 신문지상의 동사건 관게 긔사일톄를 게재금지까지한후 이래 게속하야 경셩디방법원예심게에서 오졍 예심판사의 손으로 예심즁에 잇더니 작보와 가치 지난 31일에 예심이 종결되는 동시에 경무국에서는 작이일오젼열한시에 동사건 내용 일부에 대한 신문 게재 해금을 하엿다.



頭(벽두)의  紐餓(조직)은 雅叙園(아서원)셔 密諸(밀의)

재작년 4월 17일 오후 1시 

제1차 조선공산당

이 피고들 중에 김재봉(金在鳳)  김두전(金抖全- 약수(若水) 유진희(俞鎭熙)  권오설(權五卨)   김상주(金尚珠)   진병기(陳秉基)   주종건(朱鍾建)   윤덕병(尹惠炳)  송봉우(宋奉璃)   독고전( 獨孤侄)  홍혜유(洪惠裕)   조봉암(曹奉岩)  김찬(金燦)  조동우(趙東祐)  등은 재작년  사월 십칠일 오후 1시 경에  시내 황금뎡 아서원이란 중국 료리집에 모히여 조선을 일본의 긔반(羅鮮(기반))으로 부터 버서나게 하는 동시에 조선의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뎍으로 조선 공산당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야 

조동우(趙東祐)  조봉암(曹奉岩)  김찬(金燦)  등 세사람을 전형위원으로 선거하야 그 사람들로 하여금 김재봉(金在鳳)  김두전(金抖全) 유진희(俞鎭熙) 주종건(朱鍾建) 조동우(趙東祐) 정운해(鄭雲海) 김찬(金燦) 등 일곱 사람을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하는 동시에

윤덕병(尹德炳) 송봉우(宋奉璃) 조봉암(曹奉岩) 등 세사람을 검사위원으로 선임하게 한 후 중앙집행 위원에 대하야 조선 공산상의 직제급당측의 제뎡 긔타 일절을 위탁하엿든바 중앙집행 위원 일곱 사람은 그 달 하순에 두 명이나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한 결과 비서부 조직부 선뎐부 등 세부를 설치하야 각긔 사무를 분담하게 되엿다.

 


신의주 사건 후 범위를 더 확장

실패를 거울 삼아 또다시 활동

제2차로 내외연락


이라하야 그들은 로동국 모스크바 국제공산당과 련락을 취한 후 갓튼 목뎍을 가진 동지 당원을 모집하고저 활동을 개시하야 여러가지로 책동하든 중에 평북 신의주 경찰서의 탐지한바가 되여 그 당원이 작구 잡히게 되엿다. 

일이 이러케 됨에 조선공산당은 장차 와해(瓦解)의 비경에 빠지게 되엿는데  김재봉(金在鳳) 김찬(金燦) 등은 이것을 근심하야 재작년 12월 경에 시내 수창동 모처에서 그 당원 강달영(姜達永) 이준태(李準泰) 이봉수(李鳳沫) 김철수(金綴沫) 홍남표(洪南杓) 등 여러 사람과 갓치 동 공산당 간부에게 그 당의 긔초만 회를 종용한 결과 그들은 김정관(金政現) 권오설(權五卨) 등과 갓치 중앙집행위원이 되여가지고 시내종로 육정목 모처에서 여러번 비밀히 회합하야 협의한 결과 경성부내에 잇는 9개의 세포단톄=야치예카=와 다섯개의 푸라구치와 동경에는 일본부 중국 상해에는 상해부 만주에는 만주부 로국해삼위에는 연해주부를 조직하엿다. 그리고 예산안 긔타 여러가지를 제뎡하고 예산에 관한 것은 국제공산당에 송치하는 한편으로 당원을 모집하고 전라남도 경상남도의 여러곳에 도잔부를 선입하는 등 전혀 조선 공산당의 발뎐을 위하야 활동 로력하엿다.



동지를 규합

전조선 연락

동지를 규합하고 전도력란

제3차로 세포단체

이러케 공산당의 주동자들이 활동을 개시하매 뜻이 서로 갓튼 동지들이 모혀들게 되엿스니 

廉昌烈(렴창렬)、朴來源(박내원)、朴珉英(박민영)、李智鐸(이지 탁)、閔昌植(민창식)、金環載(김경재)、朴台弘(박나홍)、金正奎 (김정규)、朴一秉(박일병)、金昌俊(김창준)、魚秀甲李相熏(어수 갑리상훈)、金東富(김동부)、李忠模(리충모)、李在益(이재익)、 具昌會(구창회)、李殷植(리은식)、柳淵和(류연화)、高允相(고윤 상)、李奎榮(리규영)、姜均煥(강균환)、李(리)?????、金演義(김 연희)、裴成龍(배성룡)、李承燁(리승엽)、朴泰善金有聲(박태선 김유성)、裴致文(배치문)、南海龍(남해용)、愼杓晟(신표성)、趙 東爀(조동혁)、李敏行(리민행)、曹俊基(조준기)、趙鏞(조 용)??????、薛炳(설병)???????、權五尙(권오상)、李奭(이석)、蔡 奎恒(채규항)、都容(도용)????????、李炳立(이병립)、鄭晋武白 光欽(정진무백광흠)、辛命俊(신명준)、金完根(김완근)、盧相烈(로상렬)、崔安燮(최안섭)、權榮奎(권영규)、韓廷植(한정식)、 吳淇燮(오기섭)、李榮泯(리영민)、李昌洙(이창수)、朴炳斗  李壽 延(박병두 이수연)

등이 그 당에 가입하게 되자

金明奎(금명규) 朴台弘(박나홍)

두 사람은 경상남도 집행위원으로 되고 신명준(辛命俊)은 전라남도집행위원으로 되엿스며 김정규(金正奎)는 일본 부의책임간부로 임명되엿는데 신명준은 申東(신동)??? 金基洙(김기수)등과 그당의 목덕을 실행코저하야 光州(광주) 順天(순천) 光陽(광양)등 세 곳에 야치에카」를 조직활동하였다. 그리고 金明奎(금명규)、黃守龍(황수용)、金尙珠(김상주)、金直成 (김직성)、金琪鎬(김기호)、金炯善(김형선) 등이 대정십삼년팔월십칠일에 조선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제도의 실현을 기하는 목뎍으로 조직한 마산공산당(馬山共 產黨)도 조선공산당에 병합하기로 결의하고 명칭을 조선공산당 마산 「야체이카」로 변경하였슴으로 조전공산당은 차차 그 긔초가 확대하게 되였다.



六月事件(륙월사건)의眞相(진상)

第一次(제일차)로民族運動劃策(민족운동획책)

이러케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조직되야 전조선 각디에 비밀히 비밀히 뿌리가 뻐더나가게 될 때에 창덕궁순종(昌德宮純宗 孝皇帝)께서 승하 하시게 되야 전조선 인심이 비통에 싸이게 되엿섯다. 이에 權五卨(권오설)、金丹冶(김단야)、朴來源(박래원)、閔昌植 (민창식)、楊在植(양재식)、李用宰(리용재) 등은 이 기회를 리용하야 순종효황데의 국장 당일에 조선○○에 관한 과격문서를 인쇄 산포하야서○○운동을 이르키고저 게획하고 權五卨(권오설)은 작년오월 십오일경에 시내 댱사동(長沙洞) 오십이번디 리수원(李壽元)의 집에서 격고문(檄告文)=(內容 (내용)은 아직 禁止中(금지중)이라 뎨한 과격한 문서의 원고를 작성 하고 朴來源(박내원)、閔昌植(민창식)、楊在植(양재식)、李用宰(이용재)등은 동십칠일부터 시내 안국동(安國洞)삼십륙번디 기타에서 그 격고문 기타 이만이천장을 비밀히 인쇄하야 백명텬(白明天)이가 조각한○○독립당(○○獨立黨)이란 인장을 찍고 金丹冶(김단야)가 붓처 보낸 곡복민에게 격함(哭服民)=(内容 (내용)은 아직禁止中(금지중)이라는 과격문서를 합하여 가지고 湖南線京釜線京元線京義線(호남선 경부선경원선 경의선)등 네방면의 텰도편으로 붓치고 朴來源(박래원)은 호남선 경부선 방면의 중심디인 대뎐(大田)에 잠복하고 閔昌植(민창식)은 경의선 방면의 중심디 사리원(沙里院) 평양(平壤) 경원선 방면의 중심 원산(元山)에 잠복하야 이것을 각도각디에 분배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내용이 과격할 뿐 아니라 경계가 엄중한 국상 당시의 일임으로 그들 은비밀문서를 발송하기에 비상히고 심하야 발서발행금지가된 개벽(開闢)과 기타 신녀성(新女性) 신민(新民)등 여러가지 잡지에다가 이 과격문서 몇장식을 너어가지고 각도형 기타관공서와 디방청년단톄에 대하야 비밀히 발송하고 혹은 朴來源(박래원) 閔昌植(민창식) 李用宰(이용재) 楊在植(양재식)등 이상뎜의 광고지 모양으로 이 격문서를 광고 우편으로 총독부 재판소를 비롯하야 기타 중요한 관텽에 발송하였스며 그남아지를 가지고 륙월십일 국장당일에 학생 인쇄직공 양말직공등과 서로 호응하야 장렬히 통과할때에 격문서를 뿌리며 조선○○ 만세를 불러 운동을 시작하고저 계획하였든 것이다.



鬪士(투사)를養成(양성)하려 海外(해외)에廿名(입명)

조선공산당이 조직되든 거의 동시인 작년사월십팔일 오후 일곱 시경에는 朴憲永(박헌영) 權五卨 (권오설) 林元根(임원근) 林亨寬(임형관) 金尙珠(김상주) 曹利煥(조이환) 朴吉陽(박길양) 洪瑜植(홍회식) 申哲洙(신철수) 張順明(장순명) 金丹冶(김단야) 金燦(김찬) 曹奉岩(조봉암) 鄭敬昌(정경창) 安相薰(안상훈) 金東明(김동명) 陳秉基(진병기)등은 시내 훈명동(薰井洞)박헌영(朴憲永)의 집에 모히여 가지고 역시 조선을 일본의 통치에서 버서나게 하는 동시에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뎍으로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產靑 年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야 朴憲永(박헌영) 曹奉岩(조봉암) 洪瑜植(홍회식)등 세사람이 전형위원(銓衡委員)이 되여가지고 朴憲永(박헌영) 權五卨(권오설) 洪瑜植(홍회식) 申哲洙(신철수) 曹奉岩(조봉암) 金燦(김찬) 金丹冶(김단야) 등 일곱사람을 중앙집행위원으로 曹利煥(조이환) 林亨寬(임형관) 金東明(김동명)등 세사람을 검사위원으로 선임한 후 고려공산청년회의 직제(職 制) 회측(會則) 강령(綱領)등 제명을 일절 위임하 엿다는 바 중앙집행위원들은 여러번 회의를 개최하고 비서부 선뎐부 조직부등을 설치하야 사무를 분담하고 모스크바에 잇는 국제공산청년회(國際共產青年會)와 련락을 취하여 가지고 회원을 모집하는 한편으로 장래 공산주의 선뎐의 투사를 양성하기 위하야 「모스크바」공산학교(共產學校)에 안상훈(安相勳)외 이십명의 류학생을 파견하였다.

이러케 활동을 게속하는 중에 비밀결사의 내용이 별항과 갓치 신의주(新義州) 변호사 구타사건으로 경찰당국에 발각이되여 회원 중 중요인물이 속속 검거를 당하게 되엿슴으로 권오설(權五卨)은 그 회의 전도를 념려하야 廉昌烈(염창렬) 朴珉英(박민영) 李智鐸(이지탁) 金環載(김경재) 李炳立(이병립) 등과 의론한 후 그들을 모다 중앙집행위원 후보자로 선거한 후 작년 십이월 이후 여러 번 시내 수창동(需昌洞)구십칠번디 됴두선(趙斗先)의 집 긔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영국무산청년회의회 측(英國無產青年會)의 會則(회측)이라고 뎨한 고려공산 청년회의 회측을 만들어가지고 그 발뎐에 로력하엿다.  이리하야 朴來源(박래원) 閔昌植(민창식) 高允相(고윤상) 權五卨(권오설) 崔安變(최안섭) 盧相烈(노상렬) 鄭淳悌(정순제) 崔一章(최일봉) 鄭順和(정순화) 鄭泰重(정태중) 許永壽(허영수) 金載中(김재중) 鄭洪模(정홍모)등 여러사람이 입회하야 光州 順天 求禮 光陽(광주 순천 구례 광양)등 네곳에 고려공산청년회의 『야체이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黃守龍(황수용) 金尙珠(김상주) 金直成(김직성) 金炯善(김형선)등이 대정 십삼년 팔월오일에 조직한 마산공산청년회(馬山共產靑 年會)가 역시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하게 되야 고려공산청년회로 차차 뿌리를 잡게 되엿섯다.



피고 99명

* 본적 -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주거 - 경성부 장사동 52번지 박영옥 방. 무직. 권오설(30) 

* 본적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명 신양동. 주거 - 경성부 훈정동 4번지. 무직. 박헌영(27)

* 본적 - 경기도 개성군 임한면 하조 강리. 주거 - 경성부 관철동119번지. 신문기자. 임원근(28)

* 본적 - 평안북도 의주군 가산면 옥강동. 주거 - 동도 신의주부 매지정 2번지. 신문기자. 임형관(25)

* 본적 - 경기도 강화군 부내면 관청리. 주거 - 우측 장소. 시대일보 강화지국장. 박길양(33)

* 본적 - 경북 대구부 덕산정. 주거 - 본적과 동일. 무직. 신철수(24)

* 본적 - 함남 원산부 룡동. 주거 - 경기도 인천부 금곡리 16번지. 무직. 장순명(28)

* 본적 - 경기도 고양군 룡강명 동막상리. 주거 - 경성부 관훈동 32번지. 무직. 홍증식(32)

(이하 생략)


事件(사건)의發覺端緒(발각단서)와 檢舉(검거)되든前後(전후)의顛末(전말)

辯護士毆打(변호사구타)로 名簿(명부)가發覺(발각)

가택을 수색하야 문서 압수

처음은 傷害罪(상해죄)로 檢舉(검거)


第一次 별항사건이 발단된 단서는 재작년 대정십사년사월경성(京城)에서 조선공산당(朝鮮共產黨)과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產靑年會)가 조직되자 전기두 단테의 관게는 국제당규(國際黨規)에 의하야 고려공산청년회는 조선공산당으로부터 외덕(外的)으로도 간섭을 바다가며 사업을 진행하던 중 고려공산 청년회는 그해 오월에 조봉암(曹奉岩)을 적로(赤露)에 밀파하야 국제공산당(國際共產黨)에 가맹(加盟)하야 결국 승인(承認)을 바더 비밀히 활동하던 중 때마츰 그해(재작년) 십일월이십륙일 신의주(新義州)에서 신만청년회(新灣青年會)원 이십오명이 로상명 경성(京城호텔에서 간친회를 열엇섯는데 청년회 중모가 참석한 변호사(辯護士)를 따린 일이 잇다.  그 일로 신의주경찰서에서는 뎨일 먼저 신의주부운정명(雲井町)사번디 김경서(金璟瑞)를 검거하야 구타죄(歐打罪)로 취조하는 한편으로 김경서의 가택을 또 수색하자 뜻밧게 「모스크바」공산대학(共產大學)에 보낸 학생 이십일명의 신분조사서(身分調査書)와 보고서(報告書)외 긔타 비밀서류를 발견하고 동서동게원이 급히 경성으로 올라와 종로서의 응원을 바더 조선공산당측의 박헌영(朴憲永)외 다섯 명과 고려공산청년회측의 이십 명을 검거하게 되엿던 바 최고 간부인 김단야(金丹冶) 김찬(金燦) 김동명(金東明)권오설(權五卨)등은 해외로 탈주하야 버렸더라.


第二次 얼마 후 작년 오월 순종효황뎨(純宗孝皇帝)인산(因山)을 긔회로 모운동을 일으키려고 인쇄한 격문(檄文)을 발각한 경기도 경찰부가 중심으로 텬도교(天道敎)간부와 그 외 수십명을 검속하는 한편 으로 해외에서 들어오는 청년들을 검거하던 중 동 륙월칠일 오후 한시에 모처에서 권오설(權五卨)=도망갓다. 또다시 들어와 잇던중=을 검거하게 되자 사건의 일부분이 발각되야 뎨이차로 삼십여 명을 검거하엿더라. 


第三次 종로서(鍾路署)는 동 사건을 취조하며 또 한편으로 칠월십 구일 시내 명치명(明治町)에서 최고 간부 책임 비서(責任秘書) 강달영(姜達永)(三九)를 검거하는 동시에 홍남표(洪南杓)집에서 비상한 암호서류(暗號書類)를 압수하게 되자 전후 사건의 내용 전톄가 들어나 뎨삼차로 전조선을 통하야 진당원(黨員)일백삼십이 명을 검거하야 취조되는대로 팔월이십팔일과 구월일일과 구월칠일 전후 세 번에 난우원 사건을 검사국으로 넘기게 된 것이더라.



暗號로 通信 變裝으로 活動

모든 문서가 암호와 부호 뿐

종로 경찰서에서는 공산당원이라는 주목을 하든 리준태(李準泰) 리상훈(李相薰) 박순병(朴純秉)의 세 명에 대하야 엄중히 취조하는 한편으로 강달영(姜達求)을 톄포키 위하야 이십여 명의 형사가 밤낫업시 활동한 결과 필경칠월십칠일 명치명(明治町) 입구에서 과실 장사로 변장하고 잇는 것을 톄포하고 전긔 세 명의 혐의자와 가치 엄중히 심문을 한 결과 필경 십팔일에 자백을 밧어 비밀문서의 소재도 알고 공산당 사건의 사실도 탐사하고 이에 의지하야 십구일 미명부터 공산당사건의 대검거를 시작하야 그날 오후 세시에 립정명(笠井町) 백삼십오번디 하숙에 류숙중인 보성고등보통학교생도 전현털(全鉉哲)에게 맛겨둔 검정 가죽가방 한 개를 압수하야 그 안에 비장한 공문 규측과 「모스코바』에 보내는 보고서와 상해련락부에 보내는 통신문 선뎐문 예산안 기타 통신문등 합게 삼십여종의 기밀서류와 돌로 색인 공산당인을  발견하였섯다. 그러나 이 비밀문서등은 전부 부호와 암호로 긔재하였슴으로 삼륜(三輪) 고등 주임 길야(吉野)경부보 대삼(大森) 김(金)류(劉)의 세 형사부당과 한(韓)형사등이 조선고래의 문자사용법과 변태언문(變態諺文) 기타 고문서등에 의지하야 연구하야 오십오 시간 만에 알어내고 이십일일 밤에 겨우 번역을 하야 노은 후에 이십이 일부터 다시 톄포키를 시작하야 시내 사십오개처에서 경게망을 치고 동경경시형외삼십경찰서에 의뢰 뎐보를 처서 시내에서 이십륙 명 디방에서 십칠명 합게 사십구 명을 톄포하고 엄중히 심문을 하야 취조를 맛치고 팔월 십일에 강달영 리준태 김연희등사십삼 명을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죄명으로 검사국으로 넘기고 팔월 십팔일부터 다시 활동을 하야 각디에서 도간부이하 디방당원 사십이명 중 이십팔명은 팔월삼십일 구월팔일의 두차레에 논하 검사국에 보냇더라.



各被告(각피고)에 適用法律(적용법률)

金在鳳(금재봉)、金若水(김약수) (金科全(김두전) 俞鎭熙(수진희)、權五卨(권오설)、金尙珠(금상주)、陳秉基(진병기)、朱鍾建 (주종건)、尹德炳(윤덕병)、宋奉瑀(송봉우)、獨孤佺(독고전 ),  洪惠裕(홍덕유)、林元根(임원근)、林亨寬(임형관)、曹利煥(조이환)、朴吉陽(박길양)、洪瑜植(홍회식)、申哲洙(신철수)、張順明(장순 명)、金正奎(금정규)、黃守龍(황수용)、金直成(김직성 ) 金琫鎬(김기호) 등의 비빌결사 조직의 소위는 치안유지법 뎨일조 뎨일항 목뎍의 실행에 관하야 행한 소위는 치안유지법 뎨이조

姜達永(강달영)、李準泰(이준태)、李鳳洙(이봉수)、金政琯(금정 관)、李炳立(이병립)、崔安燮(최안섭)、盧相烈(로상렬)、辛命俊 (신명준)、鄭淳悌(정순제)、李智鐸(이지탁)、金璟載彭三辰(김경 재팽삼신)、金宗信(김종신) 등이 비밀결사의 내용을 알고 가입한 소위는 치안유지법 뎨일조 뎨일항 목뎍의 실행에 관하야 행한 소위는 치안유지법 뎨이조

權五卨(권오설)、廉昌烈(렴창렬)、朴東源(박동원)、朴珉英(박민영)、閔昌植(민창식)、朴台弘(박나홍)、金正奎(김정규)、朴一秉 (박일병)、金昌俊(금창준)、魚秀甲(어수갑)、李圭熏(이규훈)、 金東富(금동부)、李忠模(이충모)、李在益(이재익)、具昌會(구창회)、李殷植(이은식)、柳淵和(유연화)、高允相(고윤상)、李奎采 (리규변)、姜均煥(강균환)、李(이)???、金演義(김연희)、 (배성용)、李承燁(리승엽)、朴泰喜(박태희)、金有聲(금유성)、 斐致文(비치문)、南海龍(남해용)、愼杓晟(신표성)、趙東爀(조동혁)、李敏行(리민행)、曹俊基(조준기)、趙鏞(조용)、薛炳明(설병명)????、李奭(이석)、蔡奎恒(채규항)、都容(도용)?????、鄭 晋武(정진무)、白光欽(백광흠)、金奎(김규)、金成珠(금성주)、 金琪鎬(금기호)、權榮奎(권영규)、韓廷植(한정식)、吳基燮(오기섭)、金完根(김완근)、李榮珉(이영민)、李昌洙(리창수)、朴炳斗(박병두)、李壽延(리수연)、鄭洪模(정홍모)、崔一章(최일봉)、 鄭順和(정순화)、鄭泰重(정태중)、許永壽(허영수)、金載中(금재중)、姜宗祿(강종녹)、尹允三(윤윤삼)、金容燦(김용찬)、李鳳洙 (이봉수)등은 비밀결사의 네용을 알고 가입한 행위는 치안유지법 뎨삼조 뎨일항

權五卨(권오설)、朴來源(박내원)、閔昌植(민창식)、楊在植(양재 식)、李用宰(리용재)등의 안녕질서를 방해코저하는 행위는 대정팔년 칙령 뎨칠호 뎨일조 뎨일항 불온문서 출판의 행위는 출판법 뎨십일조 뎨일항

洪德裕(홍덕유)는 명예훼손의 소위는 형법 뎨이백삼십조에 각귀 해당하는 바로 피고 등의 행위 중에는 련속뎍 범죄와 밋 일개의 행위로 여러가지 죄명에 뎌촉되며 또는 재범과 병합죄에 걸리는 행위임으로 형법 뎨오십오조 뎨오십사조 뎨일항과 뎨오십칠조 뎨사십칠조 뎨십조으로 뎍당히 처단할자이라하야 형사 소송법뎨 삼백십이조에 의하야 공판에 부첫다하며 

李榮珉(이영민)、李昌洙(리창수)、朴炳斗(박병두)는 대정십사년 구월이래 대정십오년륙까지 순련군순텬면행뎡 농민련합회관에서 일본의 국톄를 변혁하고사 유재산을 부인하는 목뎍으로써 순텬농민련합회 무산동맹등을 조직 활동한것은 공판에 붓칠만한 혐의가 충분치 못하나 피고등에 대한 전긔범죄와 관게가 잇다하야 긔 소하엿다하야 

金景瑞(금경서)、趙東根(조동근)이 고려공산청년회에 입회하야 신의주나 혹은 안동현에 집을 두고 청년회본부와 국외에 판견한  공산청년회원 조봉암과 사이에 련락을 취하엿스며 金世淵(금세연) 金英禧(김영희)는 대정십사년사월경까지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엿고 金景瑞(금경서) 獨孤佺(독고전)은 대정십사년 십일월 이십이일 신의주부내 경성식당에서 박유뎡(朴有楨)  기타를 구타하야 안경과 시계를 깨치엿다는 사실은 형사 소송법 뎨삽십삼조에 의하야 면소하엿다하며 피고 권오설과 박헌영(朴憲永) 기타 몃사람과 가치 의론한 후 대정십사년사월팔일 박헌영의 집에서 일본국톄를 변혁하고 사유재산을 부인할 목뎍으로써 고려공산청년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그 실행을 위하야 찬동하엿다는것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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