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
2024년 5월 17일 (사)권오설·권오상기념사업회가 출범했습니다.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권오설과 권오상은 3·1혁명,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 국내 3대 민족운동으로 꼽히는 6·10만세운동의 주역입니다. 그렇지만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민족해방의 날을 미처 보지 못하고 옥중 순국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70년의 긴 세월을 남북 모두에서 망각을 강요당한 비운의 혁명운동가이기도 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다음 해 6월 10일, 한 시인은 20년 전의 6월 10일을 기념하는 시에서 “죽은 왕자(王者: 순종)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 동포의 자유를 위하여 싸움의 뜨거운 씨를 뿌리던 스무 해 전 6월 10일 항일전선의 긴 대열로 묵묵히 걸어가던 청년의 가슴 속엔 조국의 첫여름 하늘이 먼바다처럼 푸르러”라고 읊었습니다. 6․10만세운동의 주역은 3·1혁명 이후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면서 민족운동의 선봉으로 성장하고 있던, 권오설이나 권오상 같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항일전선의 긴 대열’로 나간 데는 ‘산 동포의 자유’ 곧 민족해방에의 뜨거운 열망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권오설은 6·10만세운동의 총지휘자였습니다. 권오설은 대중 시위를 준비하면서 여러 개의 격문을 준비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격고문」이라는 이름의 격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이 곧 계급해방이며 정치해방이 곧 경제해방”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일본 제국주의 앞에 모든 조선 사람이 피압제자이자 피착취자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민족모순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민족모순의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결책은 바로 민족 혁명 곧 독립이었습니다. 「격고문」의 마지막 구절, 곧 “끝까지 싸워서 완전 독립을 회복하자! 혁명적 민족 운동자 단결 만세! 대한 독립 만세!”야말로 당시 권오설·권오상 등 6·10만세운동의 주역들이 구상한 민족통일전선 운동,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대중 시위 운동의 핵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평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는 합니다. 6·10만세운동도 민주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이후 물꼬가 트였습니다. 권오설이 사망한 지 75년, 그리고 권오상이 사망한 지 77년이 되는 2005년, 권오설에게는 건국훈장 독립장, 권오상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6·10만세운동이 일어난 6월 10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고, 2021년에는 권오설이 국가보훈처가 정한 6월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이로써 권오설과 권오상을 비롯한 6·10만세운동 주역들의 복권이 이루어졌고 이들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된 셈입니다.
그러나 망각의 시간이 너무 길기에 다시 기억하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민족해방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목숨까지 바쳐서 끝까지 싸웠던 권오설과 권오상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분단 체제의 극복과 평화공존, 그리고 민족통합의 밑거름으로 삼을 것을 다짐합니다. 죽는 날까지 민족 혁명을 위한 한 길을 걸었던 권오설과 권오상의 삶이 올바로 재평가되어 안동의 권오설과 권오상이 아니라 민족의 권오설과 권오상으로 기억될 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법인 권오설·권오상 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