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설이 목숨을 잃은 지 15년 후 해방이 되었지만 곧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조국은 분단과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만으로 항일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다 바친 그의 인생은 철저하게 부정당하고 외면당했습니다. 오히려 그의 유족들은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낙인으로 주위의 비난과 모욕을 참아내며 평생을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2001년에는 권오설선생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11일 가일마을 입구에 권오설선생기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마침내 2005년 3.1절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권오설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며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그가 순국한 지 75년 만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묘지 이장 과정에서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졌던 철제관의 납땜이 사실로 밝혀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21년 국가보훈처는 6월을 맞아 6·10만세운동의 주역 권오설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여 그의 독립운동을 선양하였습니다.
